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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

'다름'에 관한 잡설 하나 2009년 2월 25일 교정을 나선 후로 과학도의 길은 깔끔히 접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로부터 1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포항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돌아오던 그날부터. 그럼에도 여전히 관심이 계속 가는 분야가 있다. 하나는 백신, 또 하나는 돌연변이. 사실 이 두 개는 맞닿아 있다. 꾸준한 백신연구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생태계에서 끊임없이 돌연변이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화제가 된 '슈퍼 박테리아'가 좋은 예다. 말이 '슈퍼'지 결국 돌연변이다. 거듭되는 변이과정으로 현존하는 항생제에 내성(resistance)를 갖게 된 미생물일 뿐이다. 달리 말해 '진화'한 것이다. 인류가 지금의 모습, 그리고 문명과 기술을 누리고 있는 이유도 사실 '변이' 과정에서 거둔 결실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더보기
불필요한 사실 또는 폐기된 사실 토론에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면서 상대방을 몰아붙이려는 사람은 즐겨 이렇게 말한다. "이건 사실이에요." 또는 "이건 팩트(fact)라구요." 독일어에서 관사 없이 쓰인 '팩트'를 종종 만나게 된다. 사실이나 팩트를 운운할 때 사람들은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할 것이 전혀 없다고 여긴다. 사변적일 때가 많은 이론과 달리 사실은 바꿀 것이 없으며, 과학은 많은 사실들을 알고 산출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사실 혹은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여기는 것은 과연 얼마나 안정적일까? 역사적으로 다음을 증명할 수 있다. 유명한 DNA 이중나선은 그것을 만들어낸 왓슨과 크릭이 충분히 많은 사실들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몇몇 사실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교과서에 나온 몇몇 구조들은 완전.. 더보기
젊은 벗에게, 마침내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아직 미흡한 점이 남아 있긴 하지만, 한겨레신문에 는 제목의 칼럼을 두 차례나 썼던 저로선 더욱 오랜만에 들어보는 즐거운 소식이었습니다. 법 개정을 통해 개방형 이사제가 도입되어 이사 수의 1/4 이상을 학교운영위, 대학평의원회가 2배수 추천한 외부인사 중 선임하게 된 반면에, 친인척의 이사 수를 전체 이사의 1/4로 제한하고 이사장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을 교장으로 임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 독립된 공인회계사나 회계법인의 감사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했고 감사 한 명은 학교운영위나 대학평의원회에서 추천하는 개방형 감사를 두게 됐습니다. 그 동안 사학재단들은 전교조가 학교를 장악한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면서 개방형 이사제에 반대한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학교.. 더보기
기억해야 할 것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돌아온 가인(歌人)은 호랑이처럼 포효했다. 이 세상에 전쟁이 아닌 것이 어디 사랑뿐이랴. 세상이, 일상이 전쟁이다. 담담히 이야기하는 말이다. 하지만 말이 아니라, 몸으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가며 전쟁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함께 살자'며 77일간 공장 안에서 농성했던 쌍용차 노동자들이 그랬다. 그 전쟁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을 봤다. 그들의 전쟁은 곧 우리의 전쟁이라는 말은 너무 많아서, 더는 외우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다. 오히려 이제 새로 기억해야 할 것은 그날 만난 사람들과 그들의 말이다. 이창근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 - 왜 싸웠는가. 많은 문제가 있겠지만 첫 번째는 억울함과 분노였다.. 더보기
리영희, <역정> 중에서 - 하루 세 끼의 식사는 보리 6할, 쌀 4할인 밥 한 그릇과 콩나물국이었다. 방어선이 주머니처럼 좁아진 부산 일대에서 어떻게 그렇게 연일 콩나물이 생산되는지 의아스러울 만큼 끼니 때마다 콩나물국이 나왔다. 밥은 그릇에 차지 않고, 국은 몇 오라기의 콩나물을 소금물에 띄운 것으로, 국물에는 아무 색깔도 없었다. 적어도 1950년 8월 당시의 이 나라에서는 최고의 '지식인'이라 할 사람들 사이에서 밥그릇 소리만 나면 싸움이 벌어졌다. 보리밥의 표면과 밥그릇 언저리까지의 거리를 현미경적 정밀성으로 측량하는 눈빛은 살벌했다. 바다 같은 물 위에 뜬 콩나물 오라기 수를 순간적으로 계량한 손들이 쟁탈전을 벌이곤 했다. 교실 마룻바닥에 보리밥 그릇이 뒹굴고, 그나마 그것으로라도 배를 채워야 할 콩나물 국물이 흥건했.. 더보기
"환생하면 연애하고 싶다"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더보기
중요한 이야기 I have two certain political beliefs: North Korea will always have nuclear weapons and class will always exist. That the Left should work to mitigate the effects of the two but not to eliminate them (I feel attempts to eliminate them end in worse violence and chaos). I'm really a conservative in progressive clothing. Conservatives look better naked. - JB Hur, 페이스북에서 더보기
프리모 레비, <지금이 아니면 언제> 중에서 (103쪽) "또 많은 젊은이들도 왔다가 내 허락과 무관하게 떠나갔네. 이 초라한 엉터리 공동체에서 기아와 공포 속에 떨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유격대에 가담해 화끈하게 싸우다 죽는 게 훨씬 뜻 깊을테니까. 역설적으로 좌절과 절망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얼마든지 죽을 수 있는 게 젊은이들의 특권이 아닌가. 그만큼 무서운 게 절망이라네. 죽음에 이르는 병이지." -빨치산 공동체 지도자 도브 원장의 말 (133쪽) 목숨을 내놓은 채 한바탕 격전을 치르며 사선을 넘어갔다 온 뒤라서 그런지, 모두 영혼과 사지가 마비된 듯 넋을 잃은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었다. 전쟁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고, 도피와 추격도 끝나지 않을 것이고, 시베리아 눈보라도 계속 몰아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