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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냥 떠다니고 있어요(I'm drifting)" "바람이 불었고, 결심했다. 기자가 되어야겠다고." 손발이 오글거려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던 이야기를, '후기'란 걸 쓰게 되어서야 털어놓았다. 고민하고 관심갖게 했던 상황들이야 많았지만 '결정적 순간'은 정말 그랬다. 하지만 그 순간, 마음을 채웠던 열정과 의지의 생명은 길지 않다. 추억보다 짧다. 만약 열정 혹은 의지마저 없다면? 타다 만 장작개비와 물에 젖어 아예 불이 붙지 않는 나뭇조각 중 어느 쪽이 더 불행할까? 아마도 후자일 것 같다. 영화 의 주인공 벤자민(더스틴 호프먼)의 모습과 비슷하다. 갓 대학을 졸업한 그는 좋은 성적, 우수한 교내 활동 등으로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텅 비어 있는 상태다.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니, 벤?" ".. 더보기
뻔한 답을 말하지만 - <그을린 사랑> 재일학자 서경식 독일 드레스덴 주립미술관에서 오토 딕스의 '전쟁'을 관람하던 주민에게 그림의 인상을 묻는다. 그는 "어머니에게 전쟁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실은 이 그림보다 더 가혹했던 것 같다"고 답한다. 하지만 직접 보지 못하고, 겪지 못한 자라면 그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전쟁이 얼마나 인간을 파괴하고,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지를 말이다. 상상 이상의 고통과 충격. 사실 전쟁의 내용과 결과는 늘 그랬다. 영화 은 마치 바다는 늘 상상보다 큰 것처럼, 전쟁 또한 생각 이상의 비극을 낳음을 보여준다. 투박하지만, '헉'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날 것 그대로를. 어머니가 죽었다. 유언을 남겼다. 아버지와 또 다른 형제를 찾아서 편지를 전달하라고, 마지막 당부를 지키지 못한다면 자신을 나체로 엎드린 채 .. 더보기
'다름'에 관한 잡설 하나 2009년 2월 25일 교정을 나선 후로 과학도의 길은 깔끔히 접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로부터 1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포항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돌아오던 그날부터. 그럼에도 여전히 관심이 계속 가는 분야가 있다. 하나는 백신, 또 하나는 돌연변이. 사실 이 두 개는 맞닿아 있다. 꾸준한 백신연구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생태계에서 끊임없이 돌연변이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화제가 된 '슈퍼 박테리아'가 좋은 예다. 말이 '슈퍼'지 결국 돌연변이다. 거듭되는 변이과정으로 현존하는 항생제에 내성(resistance)를 갖게 된 미생물일 뿐이다. 달리 말해 '진화'한 것이다. 인류가 지금의 모습, 그리고 문명과 기술을 누리고 있는 이유도 사실 '변이' 과정에서 거둔 결실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더보기
"니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저마다 가진 벽이 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그 벽은 높낮이가 그때그때 달라진다. 상황에 따라 다르고,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럼에도 결코 허물어지진 않는다. 다만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높이를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해받고 싶어한다. '나'를 지키며 관계 맺는 방식은 늘 이랬다. 한때는 그 벽을 허물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겐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나는 체념하고 인정하는 길을 택했다. 다만 그 높이를 조금이라도 더 유연성 있게 조절하는 힘을 갖고 싶었다. 그게 할 수 있는 전부이자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벽'은 나를 지키는 길, 내 자존심이라고 믿고 있다. 그게 남들 눈에 '방어적'이라든가 '고집'으로 보인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건 사실이니까. 수긍하되 부정하지 못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