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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

불필요한 사실 또는 폐기된 사실

토론에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면서 상대방을 몰아붙이려는 사람은 즐겨 이렇게 말한다. "이건 사실이에요." 또는 "이건 팩트(fact)라구요." 독일어에서 관사 없이 쓰인 '팩트'를 종종 만나게 된다. 사실이나 팩트를 운운할 때 사람들은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할 것이 전혀 없다고 여긴다. 사변적일 때가 많은 이론과 달리 사실은 바꿀 것이 없으며, 과학은 많은 사실들을 알고 산출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사실 혹은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여기는 것은 과연 얼마나 안정적일까? 역사적으로 다음을 증명할 수 있다. 유명한 DNA 이중나선은 그것을 만들어낸 왓슨과 크릭이 충분히 많은 사실들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몇몇 사실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교과서에 나온 몇몇 구조들은 완전히 틀린 것들이었다)을 깨닫고 받아들임으로써 결정적인 통찰에 도달한 덕분에 존재하게 되었다. 예컨대 10월호에 쓰여 있듯이, 사실은 끊임없이 달라진다. 세 가지 예를 살펴보자.

1) 천문학은 정상 위성과 비정상 위성을 구분한다. 이 구분은 정상 위성, 즉 행성의 적도면에서 궤도 운동을 하는 위성이 비정상 위성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표현하려는 취지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이(또는 안다고 여기듯이), 황당하게도 진짜 사실은 정반대다.

2) 진화생물학자들은 육지의 척추동물들이 주요 특징들을 육지에서 획득했다고 확신했다. 당연히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이(또는 추측하듯이), 그 특징들은 이미 바닷속에서 획득되었다.

3) 빛이 물질 속으로 들어갈 떄 방향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려주는 광학적 굴절률은 양수(+)라는 것은 이제껏 당연한 사실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정반대의 효과를 일으키는 구조들이 있음을 안다. 그것들은 빛을 음(-)으로-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굴절시킨다.

이제 사실들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고 우리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되었다. 우리가 사실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만드는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사실들도 우리의 작품이다. 우리는 오히려 이론들에 의지해야 한다. 더 오래도록 존속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이론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이다.

- 에른스트 페터 피셔 141~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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