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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

1987년 1월 17일 <동아일보> 김중배 칼럼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 저 죽음을 응시해주기 바란다. 저 죽음을 끝내 지켜주기 바란다. 저 죽음을 다시 죽이지 말아주기 바란다.

태양과 죽음은 차마 마주볼 수 없다는 명언이 있다는 건 나도 안다. 태양은 그 찬란한 눈부심으로, 죽음은 그 참담한 눈물줄기로, 살아있는 자의 눈을 가린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군, 스물한살의 젊은 나이에 채 피어나지도 못한 꽃봉오리로 떨어져간 그의 죽음은 우리의 응시를 요구한다. 우리의 엄호와 죽음 뒤에 살아나는 영생의 가꿈을 기대한다.

"흑흑흑 …"

걸려오는 전화를 들면, 사람다운 사람들의 깊은 호곡이 울려온다. 비단 여성들만은 아니다. 어떤 중년의 남성은 말을 잇지 못한 채 하늘과 땅을 부른다. 이 땅의 사람다운 사람을 찾는다.

그의 죽음은 이 하늘과 이 땅과 이 사람들의 회생을 호소한다. 정의를 가리지 못하는 하늘은  '제하늘'이 아니다. 평화를 심지 못하는 땅은 '제땅'이 아니다. 인권을 지키기 못하는 사람들은 '제사람들'이 아니다.

이제 민주를 들먹이는 입술들마저 염치없어 보인다. 민주는 무엇을 위한 민주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하늘과 땅을 가꾸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민주를 들먹이기 이전에 인권을 말하자. 그 유린을 없애고, 그 죽음을 없애는 인권의 소생을 먼저 외쳐야 한다.

나는 '인권이 곧 나라'임을 서슴없이 말해온다. 인권이 희석되면, 나라의 바탕인 민(民)의 연대도 희석된다. 연대의 끈이 끊긴 나라는 '사막의 나라'일 뿐이다. 그 어길 수 없는 실감은 호곡하는 전화의 울림 속에서도 거듭 확인된다.

한스 켈젠은 「민주정치의 진위를 가르는 것」이라는 저서에서 대표성과 다수결의 원리를 말하고, 종교와 경제의 민주적 흐름을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책엔 빠져있는 인권을, 민주정치의 진위를 판별하는 으뜸가는 징표로 삼고 싶어 한다.

인권이 목적이라면 민주는 그 수단이다. 따라서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국가권력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언제 어느 땅에서나 민주를 노래할 수 없다. 인권이 유린되는 민주란 '레테르의 사기'이며 역설일 뿐이다.

이른바 '성고문' 파동의 한 가운데 섰던 권양을, 그 변호인단은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기를 삼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건 비록 무너졌으나마 처녀의 마지막 '성역'을 지키고자 하는 뜻이다. 

그러나 박종철, 그의 죽음과 이름은 거듭 되새겨지고 거듭 불려져야 한다. 건강과 밝음이 충만했다는 그 젊음이 무슨 변고로 주검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는가. 우리는 그 진상을 한 점의 의문도 없이 밝혀야 한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인(死因)'을 파헤쳐 되풀이 될 수 없는 그 '사인'을 죽여야 한다. 그것이 박종철, 그의 죽음을 살리는 길이다.

경찰은 책상을 '탕'하고 한 번 쳤더니 '억'하고 쓰러졌다고도 말한다. 그럴 수가 있는가. 연행의 시간과 자리도 하숙집 주인의 진술과는 어긋난다. 사망 전후의 병원 이송 여부와 사망의 경과도 이미 애당초의 발표와는 일치되지 않는다.

설령 한 번의 '탕' 소리에 '억'하고 쓰러졌다손치더라도 경찰의 해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는 없다. 앓는 피의자는 경찰의 보호를 요구한다. 그건 국민의 신체와 재산을 지킨다는 국립경찰의 으뜸가는 의무이기도 하다. 그것도 경찰관서의 구내에서 앓는 피의자를 방치한다는 건 경찰의 제 모습이 아니며 부작위의 범죄에 다름 아니다.

합법적 절차를 밟지 않는 연행에도 새삼 제동이 걸려야 한다. 임의동행은 그야말로 '임의'에 따라야 하며 사전에 알려지고 공개되지 않으면 안된다.

제도적으로 연행된 피의자는 즉각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이 보장된다면 우리가 응시해야 할 죽음은 태어날 턱이 없다.

거듭 말하고자 한다. 설령 고문이 없었다고 할지라도 죽음의 방치는 용납될 수 없다. 다시 처녀의 부끄러움을 벗고 법정에 선 권양의 최후진술이 생각난다.

무더운 여름날, 한 여학생이 교도소에 끌려왔다. 그 여학생은 화상을 입어 하반신이 곪아 터졌다고 한다. 그러나 교도소는 검찰의 지시가 없다는 이유로 찜질이나 응급조치 없이 방치했음을 고발하는 것이다. 권 양은 말한다.

"나는 너네도 딸이 있고 너네도 사람이냐고 외쳤습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사람의 도리입니다."

그렇다. 인권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그것은 어김없는 사람의 사람다운 도리인 것이다. 그 사람의 도리를 어기는 땅에선 어떤 찬란한 이데올로기도 무색할 뿐이다.

그 역리를 바로 잡으려면 우선 박종철, 그의 죽음이 우리 앞에 눈이 부시도록 조명되어야 한다. '사인'은 거침없이 밝혀지고, 그 '사인'을 죽이는 길이 열려야 한다.

그 무거운 과제는 경찰이나 검찰만의 책무는 아니다. 그의 죽음은 이제 나라의 일이다. 겨레의 일이다. 한 젊음의 삶은 지구보다도 무겁다. 죽음의 무게도 그보다 가벼울 수는 없다.

국회도 불을 밝혀야 하고 법률전문직 단체도 무심할 수만은 없다. 그의 죽음과 삶은 그 한 젊은이만의 죽음과 삶일 수 없다. 우리 모두의 죽음과 삶이다.

이제 거짓의 하늘은 사라져야 한다. 거짓의 땅도 파헤쳐야 한다. 거짓의 사람들도 다시 태어나야 한다.
 
나라의 중심도 권력 쪽에서 내려 잡혀야 한다. 나라의 중심이 힘을 가진 자 쪽에 두어져서는 안된다. 힘이 없는 민중 쪽에 나라의 중심이 내려 잡혀야 한다. 

광주의 5월에 이어지는 '5월시' 동인들은 일찌기 '하늘아, 땅아, 많은 사람아'를 외쳤다. 이제 박종철, 그의 죽음 앞에서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의 호곡이 피어난다.

그 호곡을 잠들게 하라.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 새로운 사람들이 피어나게 하라. 그것이 그의 죽음을 영생으로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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