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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

버티는 것에 대하여

평소 록키를 ‘건달’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체육관장 미키가, 챔피언 아폴로와의 결전을 앞둔 록키에게 매니저가 되어주겠다며 찾아온다. 그러면서 자신이 젊었을 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고 얼마나 훌륭한 복서가 되었는지 주구장창 늘어놓는다. 록키는 폭발한다.

“엄청 오래 걸렸군요. 내 집까지 오는 데 무려 10년이나 걸렸어요. 10년. 왜요, 내 집이 싫어서요? 좁아서요? 냄새가 나요? 그렇죠, 냄새가 나죠! 당신은 전성기를 얘기하는데, 그럼 내 전성기는 어디 있어요? 당신은 그거라도 있지, 난 아무것도 없어! 난 벌써 서른 살이야! 경기를 해봤자 엄청나게 얻어맞겠지, 다리도 팔도 이젠 전처럼 말을 안 들어! 이제 와서 날 도와주겠다고? 여기 들어오고 싶어요? 그럼 들어와요! 냄새가 지독해! 젠장 온 집안이 냄새 투성이야! 날 도와줘 보라고요!”

그 좁고 더러운 방은 스탤론이 시나리오를 썼던, 실제 자기 단칸방이었다(제작비가 모자랐다. 영화 내내 록키가 입고 다니는 옷이나 모자도 스탤론이 평소 쓰던 것들이다). 그는 20대 내내 단 한 번도 찾아와주지 않았던 그 ‘기회’라는 것에 대해, 록키의 입을 빌어 분노하고 있다.

다음 장면. 챔피언 아폴로와의 시합 전날 밤이다. 록키는 벌벌 떨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보다 못한 그의 연인 애드리안이 시합을 만류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록키가 말한다. “시합에서 져도, 머리가 터져버려도 상관없어. 15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아무도 거기까지 가본 적이 없거든.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 있으면, 그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 다음 날. 15라운드 마지막 종이 울렸을 때 록키 발보아는 두 발로 서 있었다. 시합 결과는 그의 판정패였다. 그러나 상관 없었다. 록키는 끝없이 흐느꼈고, 관중은 승자가 아닌 패자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록키의 마지막 대사가 흘러나온다. “애드리안, 내가 해냈어.”

<록키>는 지난 세월을 꼰대들과 불화하며 답답하게 보낸 서른 살의 한 남자가 세상의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온전하게 증명해내는 이야기다. 그의 해답은 이기든 지든 끝까지 자기 힘으로 버티어내는데 있었다. 지난 2년 6개월 동안 이 칼럼을 쓰면서 언제나 록키 발보아 이야기로 끝을 맺고 싶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모두들, 부디 끝까지 버티어내시길.

허지웅, '마지막 칼럼, 버티는 것에 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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