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버는 정치와 사회에 엄격한 의미에서의 도덕적 기준만이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크게 강조한 대표적인 현실주의의 이론가이다. 그는 정치가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사실에의 충실성이고, 자기가 인지한 객관적 사실에 따라서 책임과 정열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는 힘이 정치지도자의 척도가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특이한 것은 정치지도자에게 기사적 성품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베버의 개인적인 선호에 스며들어 있던 보수성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지만, 그가 강조한 정치에서의 책임윤리의 심리적인 자원과 인품 상의 자질을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사가 가질 수 있는 명예 감각은 계급적 함의를 가지면서도 많은 독일인에게 보편적인 의미를 갖는 가치로 보인다. 그러한 명예의 이념이 없다고 하더라도 정치 지도자가 단순한 권력자가 아니라 높은 인격적 모범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를 바라는 것은 사람들의 심리에 깊이 스며있는 기대일 것이다. 이번 일에 대한 여러 반응들을 보건대, 독일에서 이러한 도덕적 모범은 정치의 토대로서 특히 강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립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자유민주당의 부대표 차슈트로프는 불프 대통령이 "우리가 대통령직에 있는 사람에게서 기대하는 위대함"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야당의 반응도 비슷하다. 클라우디아 로트 녹색당 대표는 "우리와 같은 민주주의에는 강한 도덕적 권위가 존재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 권위는 연방대통령에 의하여 대표되어야 하고 또 역대 연방대통령들이 대표하여 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민주당 대표 지그마르 가브리엘은, 문제의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직책을 "바르게, 믿을 수 있게" 수행하는 데에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회민주당 연방의회 원내대표 슈타인마이어 의원은 인터뷰에서 "도덕적 성실성"을 가지고서 수행될 때에만, "신뢰할 수 있"는 공직이 대통령의 직책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신문의 독자가 표현한 것들도 대통령 그리고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도덕적 귀감을 찾을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한 독자는 정치적 소신이 달라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했고, 다른 독자는 이번 일이 정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또 한 번 손상했는데, 대통령은 국민이 그 정직성을 믿을 수 있는 국민의 대표라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관저 앞에서 벌어졌던 시위대가 내건 플래카드에는 "그는 거짓말을 했다"라는 것이 있었다. 좌파당의 네스코비치 연방의원의 말은 이러한 도덕의 핵심을 가장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다. "불프 대통령은 진실에 대하여 윤리적 관계가 아니라 계산적인 관계를 가진, 직책의 소임에 맞지 않는 대통령이라는 인상을 준다"고 그는 말했다. (불프대통령이 주변인사에게 "이러한 일은 일년이면 잊혀질 사건"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바로 진실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계산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태도를 드러낸다고 할 것이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불프 대통령 관련 사건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다른 정치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돈봉투 거래, 정경유착, 특혜, 거짓 해명, 윤리도덕의 정치적 전략화-이러한 것들이 일상화된 우리 정치의 특징이다. 여기에서 도덕적 명예가 중요한 정치 요인이 될 수 없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에게 정치는 철저하게 현실 전략이다. 그러나 역사의 긴 시간을 두고 볼 때, 도덕적 위엄을 갖추지 않은 지도자가 강한 지도자가 될 수 없고, 도덕적 신뢰를 가질 수 있게 하지 못하는 정부가 안정된 정부가 될 수는 없다. 독일에서 일고 있는 정치 문제는 이러한 잊혀진 정치 원리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 1/17 <경향>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 '정치지도자의 명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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