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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

젊은 벗에게,

   마침내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아직 미흡한 점이 남아 있긴 하지만, 한겨레신문에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라>는 제목의 칼럼을 두 차례나 썼던 저로선 더욱 오랜만에 들어보는 즐거운 소식이었습니다.  

 

  법 개정을 통해 개방형 이사제가 도입되어 이사 수의 1/4 이상을 학교운영위, 대학평의원회가 2배수 추천한 외부인사 중 선임하게 된 반면에, 친인척의 이사 수를 전체 이사의 1/4로 제한하고 이사장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을 교장으로 임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 독립된 공인회계사나 회계법인의 감사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했고 감사 한 명은 학교운영위나 대학평의원회에서 추천하는 개방형 감사를 두게 됐습니다. 

 

  그 동안 사학재단들은 전교조가 학교를 장악한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면서 개방형 이사제에 반대한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학교운영위에서 전교조 조합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미만이고 그나마 학교운영위에서 2배수를 추천하게 되어 있으므로 개방형 이사제가 도입되어도 전교조 조합원이 이사에 선임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결국 그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었고 몰상식과 뻔뻔함의 발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학재단이 실제로 두려워한 것은 전교조가 아니라 투명성이라는 빛이었습니다. 그들이 조중동과 함께 ‘전교조 죽이기’에 나선 것은 급진적인 전교조를 내세우면서 그들의 밀실에 빛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번에 개정된 법안은 실상 상식의 복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과 사학재단은 한 패가 되어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사립학교법인협의회는 학교폐쇄와 신입생 배정 거부 등을 논의 중이라고 하며, 위헌 여부가 날 때까지 불복종 운동을 벌일 방침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순교를 각오한 투쟁”까지 말하고 있는데, 솔로몬의 지혜를 조금만 빌려와도 그들에게 교육은 목적이 아니라 사익추구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익추구집단은 사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무척 집요하고 열성을 부립니다.

  

  볼테르는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는 것에 비해, 지혜로운 사람들이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에 개탄했습니다만, 이 땅의 사익추구집단이 보여주는 억지와 집요함 그리고 열성스러움은 대단한데, 지혜로운 사람들은 너무 점잖고 열의를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사회정의와 공공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사익추구집단만큼 열의와 집요함을 보이는지 돌이켜봐야 합니다. 또 사익추구집단들은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선 누구든 함께 결합하는데 비해 사회정의와 공공성을 추구한다는 사람들은 자칫 연대보다는 비판에 익숙하지 않은가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에 한겨레신문 창간주주이며 독자라고 밝힌 두 분에게서 한겨레신문을 끊겠다는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한 분은 황우석 교수에 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의혹을 기사화한 한겨레가 용서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했고, 전교조 교사라고 밝힌 다른 한 분은 교원평가제에 대한 한겨레 논조가 아주 틀렸다고 했습니다. 아직 답신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데, 저도 한겨레 논조에 100%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익추구집단은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누구든 합집합으로 결합하는데 반해, 공공성과 사회정의를 고민하는 분들은, 서로 연대하고 힘을 합쳐야 함에도, 지나치게 의견의 동일성을 요구함으로써 결국엔 모두 교집합으로 분리된다는 점입니다.

   우리 사회의 진보를 모색하는 젊은 벗은 부디 이 점에 관해 성찰하기를 바랍니다.

                                             

 한겨레 제2창간운동본부 독자배가추진단장 홍세화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