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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

파란 우비와 한 남자 파란 우비를 입고 서 있었다. 비 오는 오후 아파트단지 입구는 한적했다. "안녕하세요"라며 수없이 허리를 숙여도 사람들은 무반응이었다. 두 세시간쯤 지났을까? 처음으로 '반가운 한 마디'를 건네받았다. 핸들을 잡지 않은 다른 손을 번쩍 들며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SM7를 몰고 있는 아주머니였다. SM시리즈는 3, 5, 7 순으로 고유번호가 붙는다. 가장 크고 비싼 게 SM7이다. 연분홍 자켓을 곱게 입은 할머니가 "고생한다"며 내 손을 잡았다. "아휴, 손 언 것 봐" 40년 넘게 한나라당만 찍었다며 지나가는 어르신도 있었다. 26일 분당에서 보낸 오후였다. 흔들리는 지하철 속에서 을 읽는다. 도서관에서 처음 본 순간, 제목 때문에 눈을 떼기 힘들었다. 그냥 한 노동자 이야기다. 스카핑 노동자로 집채.. 더보기
자살의 항변을 듣지 못하는 … …저 악명 높은 ‘징벌적 수업료제’를 소위스카이대학에 도입했다면 자살을 감행한 학생이 수십 명은 족히 나왔을 것이니까. 좌절과 열등감에서 빠져나올 비상구가 차단된 젊은이에게 그것은 족쇄이자 낙인이다. 시대정신 혹은 역사적 대의에 몸 바쳤던 그 시절엔 개인적 고민이 오히려 가볍게 느껴졌던 것은 역설적이다. 이성의 등불로 시대의 어둠을 밝히려는 대의(大義) 하나만으로도 벅찼다. 역사의 부름에 청춘을 산화한 선배들의 유언이 진달래꽃처럼 붉게 피어나는 이 봄날 캠퍼스에 후배들은 시대의 수인(囚人)이 되어 모험과 반역의 유혹을 접어야 한다. ‘공장처럼 효율성만 강조하고 철학이 없다’는 KAIST 학생의 절규에 서 총장은 예의 소방호스론’으로 응답했다. 물을 쏟아붓는 듯한 공부압박을 이겨낸 정신적 양식을 젊은 시절.. 더보기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앞에서 지금도 내가 .. 더보기
찬란한 예감 새날이 밝았다. 오빠가 오래간만에 잘 잤노라고 기지개를 폈다. 나는 앞으로 후퇴한 정부가 수복됐을 때 생각만 하고, 당장 당면한 또 바뀐 세상엔 어떻게 대처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선 대책 없는 식구들이 답답하고 짐스러웠다. 오빠를 손수레에서 내려놨다고 해서 내 짐이 가벼워진 건 아니었다. 나는 바뀐 세상의 눈치를 보려고 조심스럽게 문밖으로 나갔다. 지대가 높아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혁명가들을 해방시키고 숙부를 사형시킨 형무소도 곧장 바라다보였다. 천지에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마치 차고 푸른 비수가 등골을 살짝 긋는 것처럼 소름이 확 끼쳤다. 그건 천지에 사람 없음에 대한 공포감이었고 세상에 나서 처음 느껴보는 새로운 느낌이었다. 독립문까지 환히 보이는 한길에도 골목길에도 집집마다에도 .. 더보기
조지 오웰, '교수형' 중에서 ...소장은 지팡이를 뻗어 시신의 맨살을 찔러보았다. 시신이 슬쩍 흔들렸다. "'제대로' 됐다." 소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교수대 밖으로 나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시무룩한 기색이 어느새 걷혀 있었다. 그는 손목시계를 흘끗 바라보았다. "8시 8분. 오늘 아침에 할 건 다했다. 휴우." 간수들은 총에서 칼을 빼내고는 행진을 했다. 개는 차분해져서 자신이 잘못한 걸 의식했는지 그들 뒤를 슬그머니 따라갔다. 우리는 교수대가 있는 뜰을 벗어나 사형수 감방들 앞을 지나 형무소 중앙 마당으로 갔다. 재소자들은 곤봉 찬 간수들의 명령하에 벌써 아침 끼니를 타고 있었다. 양철 그릇을 하나씩 들고 줄줄이 앉아 있는 그들 사이로, 들통을 든 간수 둘이 지나가며 밥을 퍼주고 있었다. 제법 가정적이고 명랑해 보이는 광경이었다.. 더보기
My Favorite Tweets #4 capcold Nakho Kim 사회적 역할 수행 측면에서 '좋은' 저널리즘과, 자가 유지가 가능할 정도로 수익성이 '좋은' 저널리즘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직면하지 않고 저널리즘의 위기나 미래를 논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1 Sep ozzyzzz 허지웅 "트위터가 세상을 바꾼다"는 수사는 권력 구조의 재편을 희망한다. 그러나 과연 인류 역사상 신기술이 가장 기본적인 층위의 권력 체계를 개혁한 일이 있던가? 그걸 광장이 대중의 힘이 어쩌고 떠드는 건 유치한 일일 뿐더러 사실 의도가 있는 '정치'다. 1 Sep psyche182 최민영 프랑스에서는 한 전문직종에 10년 이상 재직하면 그에 상응하는 석사학위를 인정해주는 제도가 있다고 들었다. 그건 매일 공부하는 자세로 열심히 일한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것. 지.. 더보기
우리의 단결을 가장 잘 정당화하는 것 우리를 둘러싼 조건이 우리의 단결을 가장 잘 정당화한다. 우리는 도덕적, 정치적, 물질적으로 황폐해진 나라의 한복판에서 서로 만나고 있따. 부패가 투표함과 주 의회 및 연방 의회를 지배하고, 심지어 판사들에게까지 손을 뻗친다. 도덕적 미풍양속은 사라졌다. 공공연한 협박과 뇌물을 막기 위해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을 격리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 많은 주의 현실이다. 신문사는 광범위하게 매수되거나 탄압받고, 공공의 견해는 침묵하고, 기업은 활력을 잃고, 가계는 빚에 시달리고, 노동계급은 가난에 허덕이고, 토지는 자본가에게 집중되고 있다. 도시 노동자는 자기방어를 위한 조직 결성의 권리를 빼앗기고, 외국에서 수입된 저임 노동자들이 임금수준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법에도 없는 고용 상비군이 소집돼 노동자에게 총을 겨눈다.. 더보기
My Favorite Tweets #3 eyebrow76 조성현 워싱턴포스트가 2년에 걸쳐 취재한 탐사보도물 'Top Secret America', 기사와 각종 취재 결과를 보고 있자니 전율이 흐르는 군요. 탐사보도의 전형을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 그자쳅니다. www.washingtonpost.com 20 Jul  madhyuk 김진혁 스스로 선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선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것이 보다 선한 결과를 (cont) http://tl.gd/2kuk38 21 Jul tweeterpoet Son Hyuncheol 손현철 문제를 내는 사람은 학교 선생이며 답을 찾는 것은 학생이 할 일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일종의 '노예 상태'에 놓여있다. '진정한 자유'란 문제 자체를 결정하고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