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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밑줄을 긋다

프리모 레비, <지금이 아니면 언제> 중에서

(103쪽) "또 많은 젊은이들도 왔다가 내 허락과 무관하게 떠나갔네. 이 초라한 엉터리 공동체에서 기아와 공포 속에 떨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유격대에 가담해 화끈하게 싸우다 죽는 게 훨씬 뜻 깊을테니까. 역설적으로 좌절과 절망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얼마든지 죽을 수 있는 게 젊은이들의 특권이 아닌가. 그만큼 무서운 게 절망이라네. 죽음에 이르는 병이지." -빨치산 공동체 지도자 도브 원장의 말

(133쪽) 목숨을 내놓은 채 한바탕 격전을 치르며 사선을 넘어갔다 온 뒤라서 그런지, 모두 영혼과 사지가 마비된 듯 넋을 잃은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었다. 전쟁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고, 도피와 추격도 끝나지 않을 것이고, 시베리아 눈보라도 계속 몰아칠 것이고, 그토록 바라던 새벽도 쉽게 찾아오지 않을 것이고, 아담의 몸에 남겨진 붉은 핏자국도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서로 마주 웃으며 빵 한 조각 나눠먹는 평화는 그렇게 멀고 먼 것이었다.

(268쪽) "바로 이 같은 썩은 소비에트 현실이 과연 그게 누구의 책임인가, 하는 문제네. 맑스? 엥겔스? 플레하노프?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 예수? 여호와? 무하마드?… 아무도 아니네! 나, 바로 나라는 존재일세. 나를 비롯한 그런 수많은 존재들이 책을 덮지 않고 책속에서 바로 길을 찾았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가 빚어졌다고 생각하네. 앞서 책을 읽고 반드시 덮으라는 것도 그런 뜻이었고…독서의 완성은 책을 덮는 거네. 책을 다 읽는다는 게 아니라 덮어야 할 때를 알고 덮을 줄 아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이네. 거기서부터 길이 시작되지." -카틴숲 대학살에 관해서, 게달레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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