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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밑줄을 긋다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중에서

- 그가 숨진 지 30년, 차마 부끄러워 이름을 부르지 못했던 전태일. 아버지가 당신의 친구들처럼 독립운동에 투신하지 못한 것에 원죄의식을 갖고 있듯이 나도 전태일에게 원죄의식을 갖고 있다. 그는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의 한 거리에서 분신자살했다. 그 가을에 나는 한창 잘 나가던 젊음을 보내고 있었다. 낮에는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고 밤에는 생맥주집에서 기고만장해서 기염을 토해대고 있었다. 중산층 가정에서 인생의 양지쪽은 당연히 내 차지라는 생각만 하고 그늘에 있는 사람의 생존 문제는 그들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청계천에서 배고픔과 졸음으로 파리하게 죽어가던 10대의 어린 동생들과 자신과 동료들의 생존권을 위해 스스로 산화했을 때, 대학생 친구가 하나만 있었다면 했던 탄식과 공책에 빼곡히 쓴 일기를 보았을 때, 그때의 충격과 부끄러움이 바로 어제 일인 듯 생생하다. 전태일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이 인생의 진로를 바꾸었던 이야기를 내 아들들에게 하다가 40년 전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건성으로 대했던 것처럼 별로 감명을 못 받는 것을 보며, 나는 내 아버지가 느꼈을 쓸쓸함과 외로움을 알 것 같았다.

-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드물게 개천에서 용이 나면 사회 전체가 축하를 한다. 그러나 그 용이 자기 자신과 가족들의 행복에만 관심이 있고 자기가 자란 개천에 아무 관심이 없으면 사회적으로 대단하게 볼 이유가 없다. 학벌과 경력이 자기 핏줄과 자기 집단의 살길을 도모하는 데만 쓰인다면 학벌에 대한 존경을 바칠 까닭이 없다. 동물의 세계에서나 부러워할 일이다.

동물은 자기 존재가 위협을 받으면 불안해서 공격을 한다. 미네르바라는 블로거가 나타나서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자 불안해졌을 것이다. 추적해보니 전문대 출신의,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서른 살의 무직자라는 사실에 '이런 것한테 당하다니, 잡아들여!' 했을 것이다. 학벌과 배경을 허가받은 칼과 펜이라고 믿고 마음대로 휘두르다가 허가받지 않은 사람이 떠들자 이른바 학벌과 배경을 가진 무리들이 개떼처럼 힘을 합쳐 응징에 나섰다. 그가 50대의 학벌도 좋고 경력도 화려한 학자나 저널리스트였다면 결코 흉악한 범죄의 현행범인 것처럼 체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 소수의 페미니스트들이 온갖 박해와 방해, 비난 속에서 시작해 이루어놓은 성과물을 대한민국 여성들 모두 무임승차로 공유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다른 부문처럼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지만 여성의 권리는 법적으로 눈부시게 신장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여성들 모두가 페미니스트들한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리나 자유에 대해 무심하다. 당연히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번쯤은 그것이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반대를 무릅쓴 투쟁에서 얻어졌으며, 거기에는 그런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 봄이 지나 여름이 왔는데도 지난 봄을 붙잡고 봄은 어떠해야 한다고 말한다. 봄은 다시 오지만 다시 오는 봄은 과거의 그 봄은 아니고 새로운 봄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 …(중략)…우리는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 서먹서먹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주춤주춤 다가간다. 그 아름다웠던 순간들, 인생에서 많지 않았던 그 뜨거운 사랑의 순간들을 잿빛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우리느 이별을 맞아야 하고 고통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모든 사랑했던 순간들에 대한 예의고 또한 이별의 예의다.

- 제도교육의 목적은 국민 대다수의 일반적인 교양수준을 높이는 것이지 몇몇 스타를 키우는 것이 아니다. 몇 해 전인가, 교육개혁에 앞장선 교육부 장관이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미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아내와 떨어져 산다고 자랑스럽게 말한 적이 있다. 현역 교육부 장관까지 이 나라의 제도교육을 믿지 못한다고 폭로한 꼴이다. 그렇게 잘 키워진 사회 각 분야의 스타들이 국위도 떨치고 돈도 잘 벌어 잘 먹여 살릴 테니 '너희 능력 없는 사람들은 박수부대로 살아라', 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