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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박기자의 하루

[서초동일기] 20151127 내가 날렵했을 때 내 몸은 날렵했다. 어제 오후, 나는 이 과거형 문장을 다시 확인했다. 서울고법 306호 법정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온 사람들이 가득했고, 비어있는 좌석은 없었다. 한 쪽 구석에 겨우 주저앉아 노트북을 펼쳤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마음먹었는데, 앞쪽으로 쏠린 몸의 중심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10여분 뒤 법원청사 2층 현관쪽에서 쪼그린 채 KTX 해고승무원노조 지부장의 말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음 먹은 대로 움직이는 몸'은 당분간은 과거형인데도, 최대한 용썼던 이유는 KTX 해고승무원들의 판결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이날 법원은 그들이 한국철도공사 소속임을 확인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의 사실상 마지막 판결을 내놨다. 원고 패소라는. 이미 몇 달 전 대법원이 같은 취.. 더보기
[서초동일기] 20151029 끈질긴 사람들 '기자'라고 불리면서 늘어난 것 중 하나는 능청이다. 대표 사례는 '잘 몰라도 은근슬쩍 끄덕끄덕하기.' 2013년이었나, 회사에선지 어디선지 선배와 대화하는 최승호 PD에게서 "요즘엔 뭐 그거, '화교남매' 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도 나는 그냥 '아 그렇구나'라는 표정으로 은근슬쩍 끄덕끄덕하고 넘겼다. 그 '화교남매'가 유우성·유가려씨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제법 시간이 지난 뒤였다. 사실 잘 몰랐다. 지난해 2월 14일 오후 5시, 법원 기자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는 민변 쪽 공지문자를 받기 전까지도 별 관심 없었다. 그날은 매우 평화로운 발렌타인데이 겸 금요일로, 별 일 없이 칼퇴를 앞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기자회견 문자는 4시 40분이었나... 아무튼 기자회견 예정 시각을 얼마 남겨두지.. 더보기
[서초동 일기] 20150807 때론 기자도 지겹다 어제(6일) 민일영 대법관 후임 임명제청이 있었다. 4일 대법관 후보자 추천위가 꼽은 세 명이 모두 '서울대·50대·남성·법관'이라는 공식에 딱 들어맞는 인물들이라 사실 별 기대 없었다(관련 기사 : '서울대·50대·남성' 또다시 맞아떨어진 대법관 공식) 이기택 후보자로 정해졌다는 소식에도 '그럼 그렇지' 했다. 당연히 비판해야 할 사안이라도 늘 같은 관점으로 같은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면 기자들도 지겹다. 이미 몇 달 전 신영철 대법관 후임을 정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던 비판들은 여전히 유효했다. 후보자 추천위가 열리기 전, 박상옥 후보자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관련 의혹으로 청문회 일정이 잡히지 않아 양승태 원장이 국회에 친서까지 보냈을 때 기사를 썼다. 모두 1)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2) 후보.. 더보기
[서초동 일기] 20150716 끝을 보고 싶었다 그만 좀 보고 싶었다. 아니, 끝을 보고 싶었다. 입사 후 기억에 남을 취재를 뽑으라면 세 가지를 말할 수 있다. 내란사건과 세월호 선원공판, 그리고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어쩌다보니 시작부터 쭉 따라가며 취재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특히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은 '추위'와 '배고픔'이라는 시련을, '타이핑능력 향상'이라는 선물을 안겨줬기에 남달랐다. '어떻게 저런 일이...'하는 생각에, 잘 기록해야겠다는 의무감 아닌 의무감도 조금은 있었고. 임신을 하고 일과 관련해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볼 때 이 사건 선고도 자연스레 포함시켜봤다. 다행이었다. 원세훈 전 원장의 구속시한 만료는 10월 8일이고, 주심인 민일영 대법관 임기는 9월이면 끝나니 충분히 직접 볼 수 있겠더라. 16일 아침엔 절로 "이제 세월.. 더보기
[서초동 일기] 20150625 조금은 서글픈 여름밤 8차선 대로를 건널 수 있는 시간은 약 17초, 마음이 다급해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는 2시, 현재 시각은 1시 50분. 결국 배를 움켜잡고 뛰었다. 오늘로 11주 1일차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봤자 경보하는 것보다 조금 빠른 속도였지만 무사히 길 반대편에 도착했다. 지난 화요일, 무수히 쏟아지는 문자 속에 ‘전원합의체 선고사건이 추가됐음을 알려드립니다’란 내용을 휘리릭 넘겼다. 어쨌든 D-Day가 찾아왔으니 일정을 다시 확인해봤다. 아차 싶었다. 이주노조 설립신고서 반려처분 취소소송을 하마터면 빼먹을 뻔한 것 아닌가; 꾸준히 관심 갖고 챙겨본 사건은 아니었다. 몇 년 전, 성소수자인 ‘미셸’이라는 이주노동자를 통역한다는 JB오빠 얘기에 ‘아 그렇구나’했던 기억이 컸을 뿐이었다. 당시 이주노조 4.. 더보기
[안국동 일기] 20150501 잔인한 오월의 밤 # 표적을 찾는 물대포의 눈에는 반짝 붉은 불빛이 서린다. 그 두 눈을 마지막으로 본 게 2013년 11월 11일이니 제법 오랜만이었다. 그래도 2년 전엔 경고 살수에 그쳤고, 요령껏 잘 피했다. 2008년 촛불집회에 나갔을 때는 두 번 모두 충돌 없이 끝났다. 그러니까 나는 어제 내 인생 첫 물대포를 맞았다. 빗맞거나 물포 끝부분을 맞았는데도 아팠다. 사실 아픔보다 순간의 공포가 컸다. 캡사이신도 이렇게 가까이서 냄새를 맡긴 처음이었다. 기침을 멈출 수가 없더라. 직접 얼굴에 맞은 사람들은 정작 정신을 못차려서 주변에서 계속 물을 찾았다. 2015년 5월인데, 분명 21세기인데... 해저도시는커녕 거리의 풍경조차 시대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나 현실이다. # 사람이 막무가내인 경우는 고집이 세거나 분노.. 더보기
[서초동 일기] 20150123 압수수색부터 대법원 판결까지 2013년 8월 28일엔 서대문구의 한 커피숍에서 급하게 '통합진보당 관계자 압수수색' 기사를 썼다. 그날 나는 환경담당으로 기후변화 관련 기획 취재를 하고 있었다. 9월 4일에는 국회 근처에 다른 취재를 갔다가 엉겹결에 이석기 전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 과정을 봤다. 다음날 구속영장실질심사부터 발부까지 취재하는 것 역시 내몫이었다. 결혼 준비를 하느라 1심은 초기만 담당하기로 했다. 하지만 몇 달 뒤 나는 수원지법 법정에 앉아서 '합정동회합'녹음파일을 듣고 있었다. 증거로 채택된 32개 전부를. 2014년 2월 17일에는 새벽 세 시에 집을 나섰다. 1심 선고공판 방청권을 받기 위해서였다. 상도동 집에서 수원지법까지 걸린 시간은 44분. 법원 당직자는 내게 "아무리 그래도 이 시간에 오시면 어떡하냐"며 .. 더보기
[서초동 일기] 20150121 나는 얼마나 다를까 두 달만에 광주에 왔다. 반팔을 입고, 샌들을 신고 처음 찾았는데 이제는 두툼한 패딩을 껴입고 도착했다. 유족들 옷차림도 비슷하게 달라졌다. 대한민국 재판이 3심제라는 건 법조인이나 당사자, 기자가 아니면 실감 못하고 살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비극과 얽혀있다면 더더욱 그들만의 일이 된다. 해경의 구조책임을 유일하게 묻는 공판이, 선원들이 책임을 두고 사실관계를 마지막으로 다투는 공판이 처음으로 열린 날인데 법원 주변은 조용했다. 선원들 첫 공판준비기일이 있던 날과 1심 선고일에 비교해보면 적막할 정도였다. 하지만 유족들은, 옷차림만 달라졌을 뿐이었다. 슬픔도, 분노도 여전했다. 280일째 그들은 2014년 4월 16일을 살아간다. 2800일째에도, 2만 8000일째에도 다르지 않겠지. 그들만 살아가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