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펜 끝을 벼리다/박기자의 하루

[서초동일기] 20151029 끈질긴 사람들

'기자'라고 불리면서 늘어난 것 중 하나는 능청이다. 대표 사례는 '잘 몰라도 은근슬쩍 끄덕끄덕하기.' 2013년이었나, 회사에선지 어디선지 선배와 대화하는 최승호 <뉴스타파> PD에게서 "요즘엔 뭐 그거, '화교남매' 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도 나는 그냥 '아 그렇구나'라는 표정으로 은근슬쩍 끄덕끄덕하고 넘겼다.


그 '화교남매'가 유우성·유가려씨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제법 시간이 지난 뒤였다. 사실 잘 몰랐다. 지난해 2월 14일 오후 5시, 법원 기자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는 민변 쪽 공지문자를 받기 전까지도 별 관심 없었다.


유우성씨 동생 가려씨가 남긴 격려메시지 "오빠 조금만 참고 견뎌줘" ⓒ 이희훈


그날은 매우 평화로운 발렌타인데이 겸 금요일로, 별 일 없이 칼퇴를 앞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기자회견 문자는 4시 40분이었나... 아무튼 기자회견 예정 시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도착했다. 당시 우리는 법조기자단에 들어가기 전이어서 서초역 8번 출구 근처 서울지방변호사회 기자실에서 헐레벌떡 법원으로 달려갔다. 숨을 헉헉대며 도착한 다음, 변호인단의 멘트를 녹음하고 정리할 때까지도 나는 이 사건의 크기를 여전히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후 국정원의 증거조작이 드러났고, 유우성씨는 간첩 혐의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3년 8월 1심 재판부가 이미 같은 판단을 내렸지만 지난해 항소심 재판부는 한 발 더 나아가 국정원이 증거를 조작했을 뿐 아니라 핵심 증인, 동생 유가려씨가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6개월간 갇힌 채 '오빠는 간첩'이라고 진술한 부분 역시 모두 불법 수집 증거라고 봤다. 그리고 오늘, 대법원은 이 판결을 확정했다.


29일 대법원 선고 뒤 소감을 말하는 유우성씨 ⓒ 유성호


지난해 <블루 드레스>를 읽으며 '한 사람의 인생이 휘말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생각했고, 그때마다 유우성씨를 떠올렸다. 본인조차 “일개 개인이 너무나 엄청난 일을 겪었다”고 할 만큼 사건의 파장은 막대했다. ‘간첩 증거 조작’이라는, 독재 시절에나 있을 법한 일이 여전히 일어날 수 있다는 끔찍한 놀라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북한이탈주민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등은 현실이었다. 여전히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그나마 유우성씨는 운이 좋은 편이다. ‘반드시 진실을 밝히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소유한데다 그 의지를 명확한 논리로 정리해줄 변호인과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버버하며 따라다닌 재판 과정에서 본 모습이 전부였지만 그들은 좋은 팀이었던 것 같다. 아직 불법대북송금사건 항소심이 진행 중이고, 당장 강제퇴거대상에 들어가긴 했지만 유우성씨는 아마 끝까지 잘 싸울 듯하다. 끈질기게 싸워 이기는 그들을 계속 보길 바란다. 별 다른 일을 못한 나야 낯 뜨겁겠지만.


29일 무죄확정판결을 기념하는 유우성씨 부부와 변호인단 ⓒ 유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