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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박기자의 하루

[서초동 일기] 20150716 끝을 보고 싶었다

그만 좀 보고 싶었다. 아니, 끝을 보고 싶었다.


입사 후 기억에 남을 취재를 뽑으라면 세 가지를 말할 수 있다. 내란사건과 세월호 선원공판, 그리고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어쩌다보니 시작부터 쭉 따라가며 취재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특히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은 '추위'와 '배고픔'이라는 시련을, '타이핑능력 향상'이라는 선물을 안겨줬기에 남달랐다. '어떻게 저런 일이...'하는 생각에, 잘 기록해야겠다는 의무감 아닌 의무감도 조금은 있었고.


임신을 하고 일과 관련해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볼 때 이 사건 선고도 자연스레 포함시켜봤다. 다행이었다. 원세훈 전 원장의 구속시한 만료는 10월 8일이고, 주심인 민일영 대법관 임기는 9월이면 끝나니 충분히 직접 볼 수 있겠더라. 16일 아침엔 절로 "이제 세월호만 남았네"란 혼잣말이 나왔다(내란사건은 이미 확정됐고, 세월호 선원공판도 구속시한이 연말까지니).


물론 마음 한구석은 이 사건이 대법원에 갔을 때부터 찜찜했다. 나는 최고법원을 믿지 못하고 있으니까. '파기환송'이라는 결과로 충격을 받진 않았지만 기분이 안 좋았던 이유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하는.


사유 역시 예상대로였다. 1심 판결을 뒤집었던 증거는,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뒤집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http://omn.kr/ekgn


ⓒ 권우성


놀랍지 않았다. 2월 9일, 항소심 판결문을 읽은 기자들은 하나 같이 '참 잘 썼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쟁점이 될 만한 내용들을 죄다 따져보고 정말 가능한 요소들만 보수적으로 택한 듯했다. 판결문에는 엑셀로 그린 차트까지 등장했다. 다들 '대법원이 이걸 깰 수 있을까?'라면서도 '깨려면 깨겠지...'라고 말했다. 재판을 쭉 지켜본 기자들이 예측한 파기환송 사유 역시 같았다. 아마 돈 내기를 했으면 승자가 없었을 테지.


딱 하나, 누구도 생각 못한 대목은 있었다. 보통 대법원은 형사사건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내며 자신들이 그것을 유죄 혹은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고 밝힌다. 그런데 이미 알려졌다시피 이번에는 그런 판단이 아예없었다. 이번엔 '참 똑똑한 양반들'이란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http://omn.kr/ekgm


어쨌든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을 두고 사법부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를 보려면 시간이 제법 더 필요해졌다. 파기환송심 선고는 그래도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나올 것 같은데, 그럼 나는 만삭이겠네... 쓸데없는 욕심일 수도 있지만 끝까지 다 보고 싶었는데, 최후의 판결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그냥 좀 끝내지,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