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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노무현의 회의록, 윌리엄 태프트의 욕조 [取중眞담] 기록이 힘없는 기록의 나라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사건 2009년 3월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 아카이브(국립문서보관소) 설립 75주년 전시장에 거대한 욕조가 등장했다. 성인 네 명은 충분히 들어갈 이 욕조의 주인은 윌리엄 태프트. 키 180cm, 몸무게 150kg에 달했던 미국 27대 대통령이다. 1908년 12월 21일 그는 군함을 타고 파나마운하 건설 현장을 돌아볼 때 선실에서 사용하기 위해 이 욕조를 주문했다. 전시장 한쪽에는 태프트 대통령이 욕조와 함께 초대형 침대 제작을 의뢰한 빛바랜 주문서도 놓여있었다. 100년 전 대통령이 쓴 욕조와 그 주문제작서가 지금껏 남아있는 비결은 미국의 국가기록물 관리제도에 있다. 건국의 역사는 230여 년으로 길지 않지만, 미국은 어느 나.. 더보기
반성 나는 왜 이걸 기사화할 생각을 못했을까... OTL 이은의11월 25일 오후 8:29 · 수정됨 · 나는 오늘 해임됐다. 여성가족부 법률지원변호사로서 봄부터 형사재판 중의 피해자를 지원해온 사건이었다. 과거 공론화되었던 사건이었고, 아직까지 결론이 안나고 1심 재판이 진행중이었다. 오늘 제주도에서 택배를 받았다. 귀한 한라봉이 포장된 상자를 보는데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그저, 피해자가 제주도로 여행을 갔나보다 생각했다. 피해자의 재판이 진척이 안되고 자꾸 제자리를 맴도는 상황이라 추가 의견서를 한창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저녁에 메일이 왔다. 피고인측이 피해자를 증인으로 다시 소환했고, 지칠대로 지쳐버린 피해자는 그 출석요구를 거부하면서 이 재판을 포기한다는 의미로 자신의 변호인도 해임한다는 해임서.. 더보기
[서초동일기] 20151127 내가 날렵했을 때 내 몸은 날렵했다. 어제 오후, 나는 이 과거형 문장을 다시 확인했다. 서울고법 306호 법정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온 사람들이 가득했고, 비어있는 좌석은 없었다. 한 쪽 구석에 겨우 주저앉아 노트북을 펼쳤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마음먹었는데, 앞쪽으로 쏠린 몸의 중심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10여분 뒤 법원청사 2층 현관쪽에서 쪼그린 채 KTX 해고승무원노조 지부장의 말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음 먹은 대로 움직이는 몸'은 당분간은 과거형인데도, 최대한 용썼던 이유는 KTX 해고승무원들의 판결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이날 법원은 그들이 한국철도공사 소속임을 확인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의 사실상 마지막 판결을 내놨다. 원고 패소라는. 이미 몇 달 전 대법원이 같은 취.. 더보기
[서초동일기] 20151029 끈질긴 사람들 '기자'라고 불리면서 늘어난 것 중 하나는 능청이다. 대표 사례는 '잘 몰라도 은근슬쩍 끄덕끄덕하기.' 2013년이었나, 회사에선지 어디선지 선배와 대화하는 최승호 PD에게서 "요즘엔 뭐 그거, '화교남매' 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도 나는 그냥 '아 그렇구나'라는 표정으로 은근슬쩍 끄덕끄덕하고 넘겼다. 그 '화교남매'가 유우성·유가려씨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제법 시간이 지난 뒤였다. 사실 잘 몰랐다. 지난해 2월 14일 오후 5시, 법원 기자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는 민변 쪽 공지문자를 받기 전까지도 별 관심 없었다. 그날은 매우 평화로운 발렌타인데이 겸 금요일로, 별 일 없이 칼퇴를 앞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기자회견 문자는 4시 40분이었나... 아무튼 기자회견 예정 시각을 얼마 남겨두지.. 더보기
"지치죠... 그래도 행복해지려고 싸운다" 갈수록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이 '언행일치'다. 말을 내뱉기는 쉽지만, 행동은 어렵다. 결국 비겁해진다. 침묵을 택한다. 그런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세상이지만, 드문드문 우리는 다른 사람도 본다. 권영국 변호사는 그 '다른 이' 중 하나다. 몇 년 전 쌍용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에 당직 취재를 갔다. 정말이지 '칼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기사를 쓰려면 사람들의 말을 받아적어야 하는데 손가락 하나 펴기도 힘들었다. 그때 참가자들 맨 앞줄에서 권영국 변호사를 봤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던 그는, 1시간여짜리 행진 참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날의 집회가 남다른 것은 아니었다. 권 변호사는 온갖 집회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경찰에 항의하다가 멱살 잡혀 끌려가고, 몇 번이.. 더보기
수사기록 아닌 재판기록 던져버린 대법원 검찰 진술 더 믿고 '한명숙 유죄' 확정... 흔들리는 공판중심주의 "검사의 수사기록은 던져버려야 합니다." 2006년 9월 19일 대전고등법원과 대전지방법원을 찾은 이용훈 대법원장은 말했다. 검찰 수사기록에 의존하던 관행을 버리고 법정에서 모든 증거를 면밀히 살핀 다음 사건의 실체를 판단해야 한다는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한 말이었다. 이후 공판중심주의는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런데 20일 이상훈·김소영·김용덕·박보영·이인복 대법관은 사법부 스스로 공판중심주의를 져버렸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한명숙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한만호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불법정치자금 9억 원을 받았다는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인정한 양승태·권순일·김신·김창석·민일영·고영한·박상옥·조희대 대법관에게 동의할.. 더보기
10대 그룹 총수 사면복권 현황...정말 심하다 최태원 SK 회장 두 번째 사면... 10대 그룹 총수 10명 중 7명은 혜택 이번에도 '회장님'은 무사했다. 13일 정부는 제70주년 광복절 기념 특별사면 대상을 발표했다. 모두의 예상대로 6527명의 사면 대상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들어가 있었다. 최 회장은 회사 돈 수백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2013년 1월 31일 1심에서 법정구속, 지난해 2월 27일 징역 4년형이 확정돼 925일째 복역 중이다. 형량도 1년 6개월쯤 남았다. 하지만 광복절 특사 덕분에 13일 밤만 버티면 다시 자유다. 복권까지 된 만큼 경영 일선에도 큰 어려움 없이 복귀할 수 있다. 최 회장이 '형집행면제 특별사면'과 '특별복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08년에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 더보기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몰랐던 대법원 판결 [取중眞담]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 무효' 판결 엠바고 논란이 뼈아픈 이유 때론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뉴스가 있다. 법원과 검찰을 담당하는 법조 출입기자들은 주요 수사나 판결 내용에 '엠바고(Embargo)'를 걸어 일정 시점까지 보도를 미룬다. 이 엠바고 대상은 출입처 안에선 모두가 알지만, 밖에선 모두가 모르는 뉴스가 된다. 7월 23일 오후 2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 무효 판결이 그랬다. 형사사건에서 불기소나 불구속, 집행유예 아니면 무죄 판결 등을 이끌어낸 변호인에게 당사자가 지급하는 성공보수는 "선량하고 건전한 사회질서에 어긋난다"는 대법원의 결론은 법조계를 뒤흔들었다. 변호사 선임료의 중요한 축인 성공보수는 변호사에게도, 변호사를 찾는 이에게도 늘 고려대상이기 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