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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박기자의 하루

[서초동 일기] 20150121 나는 얼마나 다를까

두 달만에 광주에 왔다. 반팔을 입고, 샌들을 신고 처음 찾았는데 이제는 두툼한 패딩을 껴입고 도착했다. 유족들 옷차림도 비슷하게 달라졌다.


대한민국 재판이 3심제라는 건 법조인이나 당사자, 기자가 아니면 실감 못하고 살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비극과 얽혀있다면 더더욱 그들만의 일이 된다. 해경의 구조책임을 유일하게 묻는 공판이, 선원들이 책임을 두고 사실관계를 마지막으로 다투는 공판이 처음으로 열린 날인데 법원 주변은 조용했다. 선원들 첫 공판준비기일이 있던 날과 1심 선고일에 비교해보면 적막할 정도였다.


이준석 선장 등의 2심과 김경일 해경 123정장의 1심 재판이 시작된 1월 20일 광주 고등·지방법원 ⓒ 소중한



하지만 유족들은, 옷차림만 달라졌을 뿐이었다. 슬픔도, 분노도 여전했다. 280일째 그들은 2014년 4월 16일을 살아간다. 2800일째에도, 2만 8000일째에도 다르지 않겠지. 그들만 살아가는 건 아닐까? 그러면 안 되는데, 라고 쉽게 말하지만 나도 잊고 살았다. 그렇게 되어버리더라.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우리가 세월호로 돌아가지 않으면 진정한 변화는 없어. 근데 그건 복잡하고 안개에 가려져 희미하단 말이지. 눈 앞에 뚜렷하고 선명하게 보이는 악인보다 알아보긴 어려운, 그래서 뭔지 모르는."


어떻게든 그 안개를 우리가 걷어내야 할 텐데, 다들 잊고 산다. 세월에 흘려보내려 한다. 모두가 그렇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른데 두려워진다. 나는 얼마나 다를까. 어쩌다 한 번 광주에 와서 재판 좀 본다고 얼마나 다를까. 이미 비슷한 걸 알면서.


사고해역 다시 찾은 지성아빠, 목놓아 울다 ⓒ 이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