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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박기자의 하루

[서초동일기] 20141113 오늘도 거리를 서성이는 아빠들

▲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무효소송에 대해 원심판결파기환송 선고가 난 1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쌍용차노조 정책기획실장과 아들 주강이가 입을 맞추고 있다. ⓒ 이희훈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에게는 '주강'이란 아들이 있다. 따로 인사한 적은 없지만 이 실장의 SNS에서 워낙 사진을 많이 봐서 내게는 참 익숙한 얼굴이다. 아이는 사진으로만 봐도 정말 개구쟁이처럼 보였다. 살짝 까무잡잡한 피부, 통통한 볼살에, 커다란 눈망울에 가득한 호기심. 늘 심각한 모습으로 집회 현장에서 만나는 아빠와는 정말 달라보였다.


그런 주강이를 오랜만에 봤다. 어제 대법원에서 만난 아이는 사진으로만 기억하던 것보다 부쩍 커있었다. 이제 아빠와 나란히 걸을 줄도 알았고,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아빠의 표정을 살필 정도로 의젓해보였다. 그래도 순간, 아이는 장난스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 당연한 '철없음'이 자꾸 눈에 밟혔다. 하늘이 너무 시리도록 푸르렀다.


6년전 여름, 영문도 모른 채 삼보일배를 하던 엄마들 옆에 서있던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란다. 그 기간 내내 아빠는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창근 실장의 부인은 뽀뽀하는 부자를 바라보며 울먹이듯 내뱉었다고 한다.

"주강아, 아빠 이제 집에 더 못 들어 오실거야. 더 싸워야 하니까."


13일 대법원은 끝내 주강이 아빠를, 그의 동료들을 외면했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은 "피고(쌍용자동차 주식회사)가 2009년 6월 8일 원고(노동자 153명)에게 한 해고는 모두 무효임을 확인한다"던 2심 판결을 깨고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2002일째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좀처럼 법정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지부 사람들을 기다리는 중간에 한 기자가 얘기했다. "고법 판결이 희망고문이었던 거지..."


▲ '대법원에 외면 받은 노동자의 눈물' ⓒ 이희훈



정말 희망고문이었을까. 2심 재판부(서울고법 민사2부·부장판사 조해현)은 지난 2월 '정리해고는 무효'라고 판단하며 회사가 ▲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와 ▲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는 법적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았다고 했다. 사측 의뢰로 회계법인이 작성한 보고서는 지나치게 회사의 자산평가를 낮게 했고(유형손상차손 과다계상), 쌍용차가 대출을 받거나 무급휴직 등 해고를 피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판결문에 "원심 판결을 수긍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미래에 대한 추정은 불확실성이 존재할 수 없는 점을 고려할 때, 그 추정이 다소 보수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합리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또 피고로서는 해고회피를 위한 노력을 다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며. 설령 "경영진의 부실경영 등으로 경영위기가 초래되었다고 해서 이러한 필요성(정리해고)이 부정된다고는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면, 일하는 사람들은 '정리해고'라는 고통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거창하게 '관(觀)'이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나는 기자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만 하는 직업이라 본다. 당장 취재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기 감정에 젖어버리면 일을 할 수 없으니까. 지난 7월 안산지법에서 단원고 생존학생들의 증언을 들으며 순간순간 울컥했지만 꾹 참고 노트북 자판을 두드릴 때도 그랬다. 그때 내가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으면 나는 기사를 쓸 수 없고, 생존자 증언을 다른 기자들에게 공유해줄 수 없으니까 감정이란 것은 꾹꾹 눌러야 했다.


그런데 13일에는 결국 울어버렸다. 한국 사회에서 중년 남성의 눈물을 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날 서초동 대법원 곳곳에선 우는 아저씨를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래도 그들을 바라보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정작 눈물은 엉뚱한 순간에, 괜찮다고, 힘내서 더 싸워야겠다고 말하는 쌍용차지부 사람들의 말을 듣는 순간에 터졌다. 내 눈물에는 책임도 없고, 고통도 들어있지 않은데, 그 눈물을 닦고나서 내가 서있는 곳은 거리가 아닌데 울어버렸다. 그들에게 정말 부끄럽고 미안했다. 


대법원 판결문을 살펴보면 아예 말이 안 된다고 치부해버릴 수는 없다. 아무리 동의할 수 없는 판결문이라도 나름의 논리는 있기 때문이다. 결국 법은 해석의 싸움이어서 재판부 역시 판결로 자신들이 판단근거가 무엇이며 그 적용 법리나 판례는 어디에 있다는 논리를 펼친다. 물론 나는 2014년 11월 13일 대법원 민사3부가 내세운 논리에 동의하지 못한다. 13쪽짜리 판결문 본문의 절반정도 분량은 '정리해고 무효판결'을 수긍할 수 없다는 내용인데, 그 논리들은 상세하지도, 치밀하지도 않다. '회사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어쨌든 누군가는 눈물을 머금고 구조조정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로만 읽힌다. "경영진의 부실경영 등으로 경영위기가 초래됐다"고 해도 결국 그 고통은 아래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이야기로만 읽힌다. 하지만 '경영상의 이유'라는, 자본가에게 칼자루를 쥐어준 법과 논리가 있고 그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 법대에 앉아왔던 이상 어느 정도 예상된 판결이었다.


'노동권'은 아직 법전에서만 빛나는 권리다. 그만큼만 노동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의 '삶'을 보지 못한다. 컨베이어벨트에서 나오는 차체를 조립하고, 공정에 맞춰 페인트칠하고, 기름때 묻은 손으로 밥을 먹으며 가족들과 웃던 날들이 사라져버린 해고자들을 보지 못한다. 마지막 벼랑끝에서, '보루'라고 믿었던 곳에게 외면당한 사람들의 뼈에 스며드는 고통과 분노, 슬픔을 보지 못한다. 아니, 적어도 그들이 이상하다고 말했던 대목들을 의심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그럼에도 기대했다. 혹시나 꿈꿔봤다. " 재판은 평화를 이룩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이 재판이 평화의 계기가 되기 위해 우리 각자가 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마지막 인내의 시간이 될 것"이라던 2심 재판부의 말이 최고법원에서도 유효하길 바랐다. 법원이니까, 마지막 보루라니까, 우리 사회에서 끝까지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는 곳이어야 하니까. 하지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아빠'들은 여전히 거리를 서성이고 있다. 날이 차고, 그림자는 깊어간다.


▲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무효소송이 원심판결파기환송 선고가 난 1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한 조합원이 정리해고자 이름이 적힌힌 종이를 뿌려 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