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펜 끝을 벼리다/박기자의 하루

[서초동일기] 20140617 그럼에도...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선원들의 공판준비기일이 열리고 있는 10일 오후 광주지방법원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검사님, 그래도 법조인인데….”


17일 광주지방법원 201호, 세월호 선원 15명의 2차 공판준비기일을 심리하는 재판장 임정엽 부장판사가 말했다. “과연 변호인들이 피고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도록 하는 게 적절하냐”는 검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그는 “변호인들은 그래도 법률적 지식이 있으니까 (재판의) 쟁점을 말할 수 있는 거고, 그들의 얘기는 정말 필요하다”며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면 반대 주장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변호사님들도 사명 갖고 하는 거니까 (유족분들이) 개인적으로 뭐라고 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재판에 참여) 안 하시겠다는데 저희가 부탁한 거니까….”


재판장은 가족들에게 거듭 부탁했다.


이날 선원들은 조는 듯한 모습으로, 변호인들은 ‘우리는 책임이 없다’는 그들의 말을 고스란히 전달했다는 이유로 유족들의 비난을 샀다. 아이를 잃은 엄마아빠의 분노는 깊었고 슬픔은 끝이 없었다.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선원들의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리고 있는 10일 오후 광주지방법원 앞. 유족들은 이날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 철저한 진상 규명과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 박소희


한 엄마는 “피고들이 자리에 앉을 자격도 없으니 바닥에 꿇어 앉혀야 한다”고 소리쳤다. 또 다른 엄마는 “(선원들이) 그렇게 급격히 (배가) 침몰할 줄 몰랐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그럼 왜 선원들은 구조가 용이한 갑판 위에 올라와 있었냐”고 했다. “지금 변호사님은 그 말씀을 변호라고 하시는 건지… 정말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 틈에 검사는 변호인이 피고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면 안 된다는 투로 얘기했다. 슬픔과 분노 앞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공판준비절차로 돌아가기 위해 판사가 마지막으로 “한 분 더 (발언하고 싶은 사람) 계시냐”고 물었다. ‘예슬이 엄마’가 손을 들었다. “나중에 이 자리를 못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정말 알고 싶은 게 하나 있다”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는 우리 애기랑 10시 12분에 5분 정도 통화했어요. 맨 첨에 ‘엄마’ 부를 때는 울지 않던 애가 제 목소리 들으면서 울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했던 얘기는 ……. ‘금방 구조되어서 나갈게 엄마. 엄마 울지 마. 걱정마지 마.’ 그리고 전화 끊긴 다음에 우리 애기는 정말 차갑게 되어서 왔어요. 


근데 (사고) 6일 만에 올라오면서 휴대폰을 가져왔고 동영상 있었어요. 거기에는, 분명 승무원들이 진도VTS랑 통화할 때는 ‘(선내)방송 안 된다’고 했어요. 9시 28분에. 근데 9시 38분에, 애들 동영상에 방송(하는 게) 나와요. ‘구명조끼 끈 제대로 묶으라’고. 우리 예슬이, 그거 듣고 너무 철없이 ‘우리 이제 바다로 뛰어드는 거야? 우리 살아서 보자’ 이게 40분 넘는 시간이었어요….


근데 이준석씨는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 정말 궁금한 게 본인들은 그 시간에 나오고, 우리 애들은 죽는 순간에도 (엄마아빠한테) ‘살아서 나온다’고 했는데… 나가면서 왜 그냥… 빨리 한 두 명이라도 나가라고… 왜 그 얘기 하지 못하고 자기들만 나왔는지, 도대체 왜 자기들만 나왔는지 그걸 알고 싶습니다. 방송이 안 된다고 했는데 우리 애기 동영상에는 분명히 방송이 됐어요. 


국선 변호사님들이 저 사람들이 변호해줘야 하는 거 압니다. 하지만, 하지만… 저희들도 왜 그 말 한 마디, 방송 끝나자마자 자기들은 마이크 놓고 나왔는지 그것만은 꼭 밝혀 달라,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꼭.”


전날 고작 세 시간 잤을 뿐이었지만, 토씨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긴장한 상태였다. 그런데 무장해제한 슬픔 앞에 그 끈은 ‘툭’하고 끊어졌다. 나는 몇 번을 움찔거리며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렸다. 타닥타닥. 숨죽여 오열하는 부모들을 차마 바라볼 수 없어 등 돌린 채로 타닥타닥.


슬프고 미안하고 고마웠다. 비통함과 원통함을 힘겹게 누르고 ‘진실’을 부탁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괜스레 숙연해졌다. 사실 다른 부모들도 비슷한 심정이었으리라. 분노, 슬픔, 원망으로 1분 1초도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그분들이 날것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을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원칙이라는 말로 설득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누군가는 얘기해야 한다. 감성에 편승하는 일은 쉽지만 맞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을 때에도. 말은 늘 큰 힘이 없고, 허공으로 날아갈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입을 떼는 것조차 큰 용기와 인내가 필요한 일이어도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 진심으로 예슬이 어머님께 감사했다. 죄도, 사람도 미워할 수 있지만 길을 잃고 헤매진 말기를. 나도, 그리고 당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