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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박기자의 하루

[서초동일기] 20150108 갈림길에 선 법치 연말에 우연히 글 한 편을 접했다. 란 제목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꼼꼼히 들여다보진 않았다. ‘법조인들이 지배하는 사회’란 주제 자체가 식상했을 뿐더러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이석기 등등의 단어로 다시 한 번 머리가 복잡해지긴 싫었다. 해를 넘긴 뒤에야 이 글을 정독했다. 지난 주말 메모해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명단을 살펴보는데 조금 놀랐기 때문이다. 위원장을 포함해 특별조사위원은 모두 17명이다. 이 가운데 14명이 사법시험을 합격한 ‘법조인’이다. 명단은 다음과 같다. - 가족대책위 추천 : 이석태 변호사(위원장), 장완익 변호사, 이호중 서강대 로스쿨 교수 - 대한변협 추천 : 박종운 변호사, 신현호 변호사 - 여당 추천 : 조대환 변호사, 고영주 변호사, 석동현 변호사, 차기환 변호사, 황전원 .. 더보기
[서초동일기] 20141113 오늘도 거리를 서성이는 아빠들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에게는 '주강'이란 아들이 있다. 따로 인사한 적은 없지만 이 실장의 SNS에서 워낙 사진을 많이 봐서 내게는 참 익숙한 얼굴이다. 아이는 사진으로만 봐도 정말 개구쟁이처럼 보였다. 살짝 까무잡잡한 피부, 통통한 볼살에, 커다란 눈망울에 가득한 호기심. 늘 심각한 모습으로 집회 현장에서 만나는 아빠와는 정말 달라보였다. 그런 주강이를 오랜만에 봤다. 어제 대법원에서 만난 아이는 사진으로만 기억하던 것보다 부쩍 커있었다. 이제 아빠와 나란히 걸을 줄도 알았고,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아빠의 표정을 살필 정도로 의젓해보였다. 그래도 순간, 아이는 장난스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 당연한 '철없음'이 자꾸 눈에 밟혔다. 하늘이 너무 시리도록 푸르렀다. 6년전.. 더보기
[서초동일기] 20140911 원세훈 1심 판결이 남긴 몇 가지 정신없는 하루였다. 새벽닭 우는 소리에 눈 비비고 일어나 첫차를 타고 제주공항에 도착, 9시 20분 서울 땅에 다시 발을 디딘 다음 부랴부랴 집에 짐을 풀고 서초동으로 향했다. 2012년 12월부터 그림자처럼 떨어지지 않던 그 사건,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의 1심 판결을 취재하기 위해. 전부 무죄 판결에, 검사가 재판장 멱살을 잡는 꿈까지 꾼 터라 괜히 뒤숭숭했다. 자리를 맡기 위해 일찌감치 법정 복도에 도착해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데도 어찌나 초조하던지. 결국 절반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법원의 판단에 씁쓸했다. 판결문은 별지를 포함해 모두 204쪽에 달한다. 하지만 이틀에 걸쳐 다 읽고 난 뒤에도 여전히 물음표는 사라지지 않았다. 11일 페이스북에 짧게 쓰긴 했지만 공직선거법 무죄 판결의 근거는 크게.. 더보기
[서초동일기] 20140702 우리는 얼마나 한결같나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사람이 있다. 서울시의원 김아무개씨다. 며칠 전 경찰은 그가 지난 3월 서울시 강서구 내발산동의 한 빌딩에서 벌어졌던 ‘수천억대 재력가 송아무개씨 피살사건’을 주도했다고 발표했다. 사건은 ‘현역 시의원’이라는 피의자의 신분, 돈과 죽음, 탈주극이라는 같은 요소가 골고루 뒤섞인 한 편의 영화였다.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한 선배는 그래도 서울이란 도시의 기초의원에 불과한 김아무개의 이름 석자를 부산의 어머니조차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한낮의 TV쇼’를 방불케 할 정도로 채널 곳곳에서 사건을 떠들어댔기 때문이리라. 선배는 이 보도들이 무죄추정원칙을 어기고 있는 건 아니냐고 물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 더보기
[서초동일기] 20140617 그럼에도... “검사님, 그래도 법조인인데….” 17일 광주지방법원 201호, 세월호 선원 15명의 2차 공판준비기일을 심리하는 재판장 임정엽 부장판사가 말했다. “과연 변호인들이 피고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도록 하는 게 적절하냐”는 검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그는 “변호인들은 그래도 법률적 지식이 있으니까 (재판의) 쟁점을 말할 수 있는 거고, 그들의 얘기는 정말 필요하다”며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면 반대 주장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변호사님들도 사명 갖고 하는 거니까 (유족분들이) 개인적으로 뭐라고 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재판에 참여) 안 하시겠다는데 저희가 부탁한 거니까….” 재판장은 가족들에게 거듭 부탁했다. 이날 선원들은 조는 듯한 모습으로, 변호인들은 ‘우리는 책임이 없다’는 그들의 말.. 더보기
시국선언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 어딜 가나 총대를 메는 사람들이 있다. 대개 성향 또는 선택의 문제인데 ‘직책’에 따른 ‘책임’일 때도 많다. 학급 반장이 좋은 예다. 급식비를 내든, 숙제를 하든, 반장은 늘 앞장 선다. ‘같은 반’이란 조직 안에서 ‘친구들’이란 구성원들을 대표하는 위치니까. 노동조합이라는,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고 원칙을 지켜야 하는 단체에서도 마찬가지다. 언론노조의 '세월호 참사 관련 현업 언론인 시국선언'은 그런 총대 메기였다. 기레기라는 말이 언론을 비하하는 용어로 등장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세월호 보도는 특정 기사나 기자에만 붙던 기레기 딱지를 집단 전체에 철썩 붙이는 근거가 됐다. 언론노동자라는 집단이 잘못을 저질렀고, 원칙을 훼손했으니 집행부는 어떤 식으로든 행동이 필요하고 봤을 것이다. 마침 .. 더보기
[서초동일기] 20140411 야근은 즐겁나...? # 이번주는 목요일 빼고 죄다 야근이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데 낯설다... 어느 정도 예상한 상황이었는데도. 오늘은 '서울시공무원간첩'사건 결심공판이 열리는 날이다. 6개월 전, '결심공판'이란 말을 들으면 '그게 뭐에요' 했는데 이제는 좀 덜 어색하다. 아무튼 검찰의 최종 의견진술에 변호인의 최후변론, 피고인의 최후진술이 있는 날이다. 초창기부터 챙겨오진 않았지만, 요몇개월 지켜보면서 이런저런 감정이 들던 사건이었다. 작고 평범한 꿈을 좇았던 청년은 지금 표류 중이다. 상상하거나 추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두만강을 건너 북에 밀입국했고, 5kg짜리 짐을 절반 정도 줄여서 중국으로 보내는 등 간첩혐의를 받으면서 말이다. 하나뿐인 동생도 푸른 꿈을 안고 들어왔지만 갖은 고초를 겪은 끝에 추방당했고. 그런 .. 더보기
[서초동일기] 20140220 그는 대법원 판결을 볼 수 있을까 ‘유서대필사건’의 강기훈씨가 13일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08년 1월 31일 재심을 청구한 지 6년, 사건이 발생한 지 23년 만이다. 하지만 그는 무덤덤했다. 그토록 기다렸을 “무죄”란 두 단어가 재판장의 입에서 나왔는데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오랜 세월 누명에 몸과 마음이 할퀴어진 사람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아직 끝난 싸움이 아니라 여겼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는 1월 16일 최후 진술에서도 “어떤 판결이 나오더라도 재판이 끝난 것은 아니다, 대법원으로 가겠죠”라고 말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상고할 수 있는 기간이 딱 하루 남았던 19일, 검찰은 유서대필사건 상고 뜻을 밝혔다. 과거 대법원 판결에서도 유죄 증거로 인정됐던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필적 감정 결과를 재심 재판부가 받..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