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펜 끝을 벼리다/박기자의 하루

[서초동일기] 20140206 김용판은 소주를 좋아해 김용판은 소주를 참 좋아하는 사람 같다. 지난해 12월 19일 피고인 신문 도중 그는 "검찰이 특정인의 진술에 너무 의존해서 짜깁기 기소한 것 아니냐, 조사받을 때 제가 말한 모든 게 유죄의 근거처럼 돼 있어서 그날 밤새도록 술 먹고 울었다"고 말했다. 재판을 마친 뒤 그는 지인들에게 "소주나 한 잔 하러 가자"고 했다. 어제 무죄 판결을 받고, 지인들과 인사하며 말한 첫 마디도 "소주 한 잔 하자"였다. 공판 시작 전의 미소는 선고 이후 내내 그의 입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날 지인들과 소주를 마시면서도 아마 김용판은 계속 웃었으리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공판을 다 지켜본 것도 아니고, 법리를 잘 모르기도 하지만 사실 김용판 공판은 좀 '까리'했다. 최근 집중 취재한 내란음모사건은 '엥? 설마 롯데리.. 더보기
[서초동일기] 20140107 그의 진짜 표정이 궁금해졌다 # '이번 열차는 OO행 첫차입니다'라는 방송을 정확히 들은 건지, 아닌지 지금도 가물가물하다. 4시 50분쯤부터 눈이 떠졌고, 긴장한 탓에 단 5분도 더 잠들 수 없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아직 세상은 밤의 품에 안겨 있었다. 공기는 예상보다 포근했다. 멀리서 보이는 붉은색 '500번' 버스 표지를 보고 부리나케 뛰어도 견딜만한 정도였다. 그렇게 오랜만에 지하철 첫차를 탔다. 불금을 보낸 다음날에도 놀랄 때 많았다. 주5일제가 시행된 지 몇 해가 흘렀는데도 여전히 토요일 새벽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으니까. 하물며 화요일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8~9시 출근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지하철 2호선 안은 제법 꽉 찬 모양새였다. 조금 피곤한 기색의 젊은이들과 달리 50~.. 더보기
[서초동일기] 20131202 빨대가 필요한 시간 "너 빨대 있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하기 싫은 말을 꺼내야 했다, 그게 사실이니까. "없는데요..." "그럼 접어. 할 수도 없는 걸 왜 하려고 그래." 곧 12월 7일이 온다. 평소보다 조금 늦장을 부려도 30~40분이면 거뜬히 출근할 수 있는, 하지만 '지옥이 있다면 여기일까'를 그 시간 내내 자문하게 하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아침마다 서초동으로 출근한 지 두 달을 채우는 날이다. 숨 막힐 듯 한 출근을 마치면, 숨 막힐 듯 한 일들이 이어지는 날이 있었다. '오늘은 뭐하지, 칼퇴나 할까'란 생각으로 그냥저냥 넘기는 날도 있었고, 기사 하나 쓰고 정보보고 하나 하고 생색내는 날 역시 제법이었다. 12월 2일은 새로운 유형을 만들었다. '오늘은 뭐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네'의 날. 출근길 스.. 더보기
[서초동일기] 20131112-1113 법을 다루는 사람들 페이스북에도 올린 글 ======================= 법이란 걸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지난달부터 법조팀에서 일하며 법정에서 나오는 말이나 사실 하나가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하다 여겼던 것들이 '나비효과'를 불러올 수 있어서다. 그래서 재판 취재가 어렵다고도 많이 느끼고, 또 법이 참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대검 감찰이나 '내란음모사건' 재판,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청구,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행정 심판 등을 보며 정부와 검찰에 날을 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 지켜봐야겠지만 어제 검찰이 이석기 재판에서 발표한 공소사실을 보면, 피고 7명이 언제 어디서 모였다는 사실관계 나열만 있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내란을 음모했는지는 보이지.. 더보기
[서초동일기] 20131105 직업병이 심해져간다 누군가를 미워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오늘은 부디 조용하길…’이라는 짧은 기도를 올린다. 지난달 7일부터 달라진 일상이다. 회사는 이날부터 법조팀을 가동했다. 몇 년 전 검찰 출입을 맡은 선배들이 있긴 했지만, ‘팀’ 규모로 검찰에서 법원까지 도맡는 일은 역사상 처음이라고 들었다. 어깨가 무거우면서도 막막했다. 지금은 어깨가 아프다. 간혹 선배를 돕기 위해 참여했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재판 취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지난 3주 동안은 국회 국정감사 기간이었다. 중간 중간 나꼼수 국민참여재판도 있었다. 열심히 키보드 자판을, 정신없이 두드려야했다. ‘토씨’ 하나에도 민감한 건 정치인만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법원과 검찰에서 오가는 토씨 하나는 누군가에겐 독이, 또 누군가에겐 복이 될 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