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펜 끝을 벼리다/박기자의 하루

[서초동일기] 20131112-1113 법을 다루는 사람들

페이스북에도 올린 글


=======================


법이란 걸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지난달부터 법조팀에서 일하며 법정에서 나오는 말이나 사실 하나가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하다 여겼던 것들이 '나비효과'를 불러올 수 있어서다. 그래서 재판 취재가 어렵다고도 많이 느끼고, 또 법이 참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대검 감찰이나 '내란음모사건' 재판,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청구,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행정 심판 등을 보며 정부와 검찰에 날을 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 지켜봐야겠지만 어제 검찰이 이석기 재판에서 발표한 공소사실을 보면, 피고 7명이 언제 어디서 모였다는 사실관계 나열만 있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내란을 음모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국보법은... 일단 이적표현물이 발견됐으니 논외로). 사실 나꼼수 재판 때는, 다른 취재랑 겹쳐 변론을 제대로 못 듣기도 했지만, 검찰이 각종 판례와 판결문을 꼼꼼히 제시해서 '흠 이러다 유죄나오겠는데'란 생각도 했다. 그에 비하면 어제 검찰은 좀... 이석기 의원 등이 'RO는 실체가 없다'며 비슷한 수준으로 반박해도 결국 입증 책임은 검찰에게 있는 것 아닌가? 아마 내년까지 재판이 이어지겠지만 지금같아선 '내란 음모죄? 글쎄올시다'쪽이다. 이왕이면 검찰이 '엄청난 증거'를 제시하고, 변호인단이 '명백한 무죄'를 뒷받침할 자료들로 맞서는 상황이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어제 내가 있던 그곳.. ⓒ 유성호


대검 감찰도 그렇다. 윤석열 전 팀장은 정직에, 박형철 부팀장은 감봉 징계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 '지시 불이행'이 이유였는데 일단 검찰공무원 비위 규정에 나오는 징계 기준에는 이 내용이 없다. 뭣보다 윤 전 팀장은 조영곤 전 서울중앙지검장에게 국정원 트위터팀 체포 문제 등 관련해 보고하러 갔을 때 '야당 도와줄 일 있냐'는 말을 들어서 '검사장님 모시고 계속 수사하긴 어렵겠다'고 판단, 독자적으로 진행했다고 했는데 이 '야당 도와줄 일 있냐'는 발언의 진위 여부가 밝혀지지도 않았다. 게다가 아무리 구속력 없는, 일종의 자문기구라고 해도 대검 감찰위원회 결론이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총장 대행은 수사팀 징계를 법무부에 청구했다. 오늘은 감찰위에서 윤석열 전 팀장은 경징계로 하자는 의견이 있었고, 조영곤 전 지검장은 왜 논의대상에도 올리지 않았냐는 지적이 나왔다고도 알려졌다. 


늦은 밤 서초동 법원과 검찰청 건물을 보면 불켜진 방이 참 많아서 '판검사도 할 짓 아니다'라고 몇 번 혼잣말을 했다. 그만큼 한 사회의 기본을 정하는 '법'을 다루는 직업은 어렵다는 뜻도 있다. 그래서 가치있는 일이기도 한데, 검찰의 이런 모습을 보면 '...'만 떠오른다.


가급적 SNS상에선 심각한 얘기를 하기 싫은데, 여기에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다는 얘기까지 들리니... 참 행정부와 검찰이 정말 뭐하는 건가 싶다. 지난번에도 한 번 '민주주의를 책으로 배운 세대'라고 했는데, 그런 나도 요즘 같아선 '서슬 퍼런 정국이란 게 이런 식으로 오는 건가'하는 생각도 든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 절망하며 허덕이는데 사회가 물질은커녕 정신적 토대의 최소한도 지탱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그래도 난 금요일부터 휴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