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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박기자의 하루

[서초동일기] 20140206 김용판은 소주를 좋아해

김용판은 소주를 참 좋아하는 사람 같다. 지난해 12월 19일 피고인 신문 도중 그는 "검찰이 특정인의 진술에 너무 의존해서 짜깁기 기소한 것 아니냐, 조사받을 때 제가 말한 모든 게 유죄의 근거처럼 돼 있어서 그날 밤새도록 술 먹고 울었다"고 말했다. 재판을 마친 뒤 그는 지인들에게 "소주나 한 잔 하러 가자"고 했다. 어제 무죄 판결을 받고, 지인들과 인사하며 말한 첫 마디도 "소주 한 잔 하자"였다. 공판 시작 전의 미소는 선고 이후 내내 그의 입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날 지인들과 소주를 마시면서도 아마 김용판은 계속 웃었으리라.


▲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은폐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6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오고 있다. ⓒ권우성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공판을 다 지켜본 것도 아니고, 법리를 잘 모르기도 하지만 사실 김용판 공판은 좀 '까리'했다. 최근 집중 취재한 내란음모사건은 '엥? 설마 롯데리아에서 내란음모를? 녹음파일도 제대로 안 들리는데? 다른 증거가 뭐야?'한 적이 많은 편이었다(물론 이것도 뚜껑을 열어봐야 하겠지만). 근데 김용판 공판은 A, B, C 등등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들의 말 군데군데 '흠.. 뭐지...' 싶으면서도 그들이 하나 같이 '권은희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진술하니 이거 어쩌나 싶었다. 결국 재판부도 진실을 다투는 데에 있어서 권은희 대 다른 모든 경찰인 구도를 깰 결정적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재판장인 이범균 부장판사의 스타일 하나는 확실해 보인다. 판결 말미에 그는 "합리적 의심 없이"란 말을 몇 차례 썼다. 원세훈 공판에서 트위터 혐의 입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에도 검찰에게 했던 얘기다. 일베에게 '종북' 폭탄 맞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도 그는 결정적 증거인 피고의 여동생 증언이 일관되지 않아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국가보안법 부분은 무죄라고 선고했다. 재판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했다면, 그가 '내부고발자'란 점을 염두에 뒀다면, 공판 중간 중간 지적했다면 하는 아쉬움이야 남을 수밖에 없지만 이번 판결을 무조건 '정치적이었다'고 말하는 일 역시 적절해보이진 않는 이유다. 


아무튼 시위를 떠난 화살은 과녁에 꽂혔다. 그 지점이 많은 이들의 예상을 빗나가긴 했지만. 남은 화살 하나는 과연 어디로 향할까. 10일 오후 2시에는 원세훈 공판준비기일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