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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우리들의 불행은 닮아 있다. 우리들의 불행은 밀려쓴 방학 일기마냥 닮아 있다. 누렇게 뜬 얼굴로 같은 출구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비슷한 크기의 수첩을 꺼내들고, 바스락바스락 뒤척여가며 신문을 읽는다. 행여 놓친 글자 하나, 말 한 마디 있을까. 국물이 다 마른 생선조림마냥 가슴이 졸아간다. 종이 울리고 건조한 목소리의 안내방송이 시험 시작과 끝을 알릴 때까지, 아니 한 번의 실패 혹은 성공을 확인하는 그때까지 가슴은 계속 졸아간다. 왜 나는 자꾸 시험장에서 꿈이 아니라 일상을, 설렘이 아니라 슬픔을 보는가. 더보기
어서, 고독해지고 싶었다. 그녀는 어서, 고독해지고 싶다. 푹신푹신한 고독감 속에 파묻혀 휴일이면 온종일 인터넷을 하거나 영화를 보고, 아무렇게나 입은 채, 아무 때나 일어나, 아무거나 먹어버리고 싶다. 그리고 가끔 손님이 오면 축제처럼 펑펑 와인을 따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랫동안 자신이 그러한 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 김애란, 침이 고인다 중에서 늘상 혼자였던 사람은, 일상이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이 되면 그 서먹서먹함을 견디기 어렵다. 나 역시 비슷했다. 겉으론 씨익 웃으면서도 교집합의 범위가 늘어날수록 어딘가 불편했다. 사람은 간사하다,고 늘 생각했다. 불편함이 익숙해지면 상황은 역전한다. 지금이 그렇다. 그녀는 천천히 껌 조각을 씹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 눕는다. 입 안 가득 달콤 쌉싸름한 인삼껌의 .. 더보기
기자로 산다는 것은..? 관심은 계속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은 뜬금없이 찾아왔다. 아마도 2008년 5월쯤이었지 싶다. 어디로 가는 길이었는지, 아니면 돌아오는 길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동네 골목길을 걷고 있었고, 순간 바람이 불었고, 나는 결심을 했다는 점이다. 무슨 영화도 아니고, 거짓말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정말이다. 그날 나는 '기자'가 되기로 맘먹었다. 세상에 대한 관심이야 늘 있었고, 아예 휴학하고 인터넷 매체에서 일하기도 했다. 글 쓰는 기계가 된 모습을 보고 실망한 건지 아니면 선명한 그들의 생각에 마냥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어서였는지 혹 그때까지도 터널 속에 머물러 있던터라 사람에게 다가기 어려워서였는지 학교로 돌아온 나는 '기자'에 흥미를 잃었다. 어쩌면 졸업이 더 급하다는 걱정이 컸기 .. 더보기
그러니까 Defying gravity 가장 머무르고 싶은 장소의 문을 여는 일조차 거부당했다. 작년엔 나만의 공간을 허락받지 못했을 뿐인데, 올해는 시작부터 끝이었다. 마음이 안좋다. 잡념이 커지고 지난 일을 되새기며 불안을 더 키우고 있는 나. 2011년 6월 29일 내내 '잘 모르겠다' 말한 나는 겸손함보다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정말 잘 안다. 할 수 있는 건, 마음을 다스리는 일뿐이고 또 다른 희망을 품고 기다려야 함을. 너무 잘 아니까 뻔한 위로는 참기름칠한 것마냥 한 귀에서 다른 귀로 미끄러진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결국 그대로 해야 할 것을. 자꾸 말하고 쓰고, 그렇게 토해내면 곧 나아지겠지. 더 좋은 일들이 날 찾아오겠지.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흔들리더라도 뿌리 뽑혀 쓰러지진 말자. 곁에 사람이 있고, 귓가에 음악이 있어 .. 더보기
신문을, 책을 보다가도 # 한 아이가 친구 머리에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전쟁놀이 중이고, 장난감 총이란다. 그런데 저 눈빛이, 텅 비어있는 듯하면서도 무미건조해보이는 저 눈빛이 두렵다. 지난 1일 1면에 '전쟁이 아이들 눈빛을 바꿔 놓았다'는 제목으로 실린 사진이다. 누군가는 그걸 낚시질이라고 했다. 어쨌든 장난 아니냐며, 과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때 '안심하고 맛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시민' 사진을 조작했던 곳답다고 말이다. 황색 저널리즘이 낳은 선정적이고 선동적인 사진이랄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저 눈빛만큼은 잊지 못하겠다. 못 한다. # 노동자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자 한 방송사의 PD가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노동 문제에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한 두 달 사이에 네 명의 노동자가.. 더보기
Glee, Don't stop believing 졸릴 땐 신나는 음악이 최고- 근데 사실 Defying gravity를 듣고 싶었다는 -ㅁ-;; 더보기
그 누구도 일러주질 않았네 공부를 잘했다. 똑똑하고 모범적이라는 칭찬은 밥 같았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에 갔다. 꽃 피는 봄, 뜨거운 여름, 아름다운 가을과 겨울을 즐기는 일만 남은 줄 알았다. 그렇게 낭만에 젖은 날들을 상상하며 부풀어 있던 19살의 꿈은 첫 수강신청일에 산산이 부서졌다. 19학점을 들어야 했다, 10과목씩. 미적분에 물리, 화학, 생물 수업도 모자라 1학점짜리 실험 과목만 세 개였다. 매주마다 각 실험의 예비·결과리포트를 써야 했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과목별 연습문제에 비하면 그 강도는 애교였지만, 무조건 리포트 6개는 완성해야 한 주가 마무리됐다. 그때처럼 지겹게 MSN 로그인을 하던 시절은 두 번 다시 없다. 과제들이 겹치면 새벽 한 두시까지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머리는 맑게 하려 발버둥쳐야 했.. 더보기
우리는 단지 운이 좀 달랐을 뿐이다 차창 밖의 을씨년스러운 풍경, 거칠게 써내려간 현수막 글씨. 그해 여름 아버지 차를 타고 쌍용차 공장을 지나갈 때 나는 숨이 턱 막혀오는 듯 했다. 덥고 습한 공기 탓만 하기에는 공장 곳곳을 둘러싼 검은 옷차림의 전경들, 멀리 보이는 파업의 풍경들이 너무 많았다. 공장의 기계는 멈춰있었고, 그곳은 전운의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차창 밖 그 풍경들은 손에 잡힐듯 하면서도 멀리 느껴졌고, 설령 잡힌다 해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다행이라고 여기며, 무전기로 누군가와 끊임없이 교신하는 사복경찰의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돌려버렸던 것 같다. 세상이 점묘화가 되고 있다. 세밀하지 않고, 드문드문 벌어진 틈이 많은, 파편화된 점들의 세상. 무너져가는 대추 초교를 두고,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을 멍하니 보다 흙..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