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하고 정확한 썸네일형 리스트형 아이들의 방 시한이 촉박해도 잘 써지지 않는 글들이 있다. 자꾸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볼 것이 없는 SNS 사이트를 기웃거리게 만드는 글들이다. 마감의 압박이 있으니 마음을 다잡기는 한다. 그런데 유독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의 방' 작업은 처음부터 그랬다. 기존 업무에 인수인계까지 겹쳤던 이번에는 더욱 속도가 나지 않았다. 결국 목표한 마감일은 미뤄졌고, 휴가를 시작하고나서야 끝을 맺을 수 있었다. 4월에 1차로 32명의 방 원고를 준비할 때도 비슷했다. 사실 1차 기록을 정리할 때는 '이걸로 어떻게 작업을 하지'라는 답답함이 크다. 거기에 사진과 추가자료를 바탕으로 살을 더해 한 아이의 방을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엄마아빠들은 대개 '우리 OO는 착했어요, 속 썩이는 법이 없었고 엄마 음식이라면 .. 더보기 기억보다 망각이 힘세다 역사는 기억 대 기억의 싸움이다. 이긴 자와 산 자의 운명만큼 어떤 기억은 선명하게 살아남고, 어떤 기억은 깨끗이 지워진다. 후자가 되살아는 길은 또 다른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뿐이다. 제주 4·3과 광주민주화운동이 그랬다. 남의 손을 빌리긴 했지만 일제강점기에서 해방하지 않았다면 "알려줘야지,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다고"라는 현실 속 안옥윤의 말은 누군가의 귓가에만 남았을 테고. 역사를 권력투쟁의 대상에서 역사 그 자체로 만드는 방법이 있긴 하다. 다양한 관점의 제시다. 물론 여기에도 오류 가능성은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부지런하지 않다. 하나의 책이 제시하는 하나의 관점을 온전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가 많다. 그러나 '한 놈만' 믿고 사는 누군가가 새로운 관점을 갖게될 가능성 역시 저버릴 수는 없기에.. 더보기 '성향'이라는 허상 한국 사회는 '진영논리'가 지배한다. 언론이라고 다르지 않다. '불편부당'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보도는 모든 언론사가 본령으로 삼고 있는 원칙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다들 공개적으로 '우리는 이러네, 저러네' 말하지 않지만 모두들 알고 있다. A신문은 보수, B신문은 진보, C신문은 친정부·기업 등등... 매체비평글에서는 '보수지' 또는 '진보지'라는 표현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누구나 저마다의 눈으로, 저마다의 세상을 들여다본다. 언론이라고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해왔듯 '100점짜리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아서다. 오히려 각자의 주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는 더 건강하고 역동적일 수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중 하나가 '다양성'인 데에는 괜한 이유가 있지 않다. 문제는 경향성이 보도의 '이.. 더보기 무관심한 사람들과 눈을 맞추다 # 평소처럼 교대역 2호선 개찰구로 향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많은 인파들을 피해갔다. 평소처럼 쓰레기통도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순간 멈칫했다. 분주하게 쓰레기를 정리하는 환경미화원 옆에는 웬 할아버지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는 쓰레기더미를 헤집으며, 다른 한 손으로 ‘초코에몽’을 움켜쥐고 있었다. 낡은 빨대는 입 안에 들어가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을 초코우유를 목마른 짐승마냥 쪽쪽 빨아대며 그는 또 다른 마실거리를 찾고 있었다. 노숙하는 사람들,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은 수없이 봤지만 거기서 찾아낸 음료를 마시는 사람은 처음 봤다. 순간 흠칫했다. # 평소처럼 이수역 14번 출구 앞을 지나고 있었다. 평소처럼 태평백화점 앞은 북적거렸다. 평소처럼 인파를 헤쳐가다 순간 멈칫했다. 150.. 더보기 새살은 돋겠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크게 다친 것은 5-7살 무렵이었다. 동네 언니 집에 놀러갔다가 계단에서 발을 헛딛었고, 넘어지면서 날카로운 계단턱에 부딪쳤다. 피를 제법 많이 흘렸던 것 같다. 어떻게 집에, 병원에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넘어지던 순간 계단의 느낌은, 그 질감과 모양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처음으로 큰 흉터도 얻었다. 왼쪽 눈가가 찢어져 몇 바늘을 꿰매야했고, 꽤 오랫동안 한쪽 눈가가 울퉁불퉁한 사진을 남겨야 했다. 20여년이 흐른 지금에는, 누군가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면 모를 정도로 상처는 아물었다. 비슷한 시기에 다친 턱 밑 흉터도 사정은 비슷하다. 하지만 남들이 잘 보지 못할 뿐이다. 내 자신은 매일 거울을 볼 때마다 확인한다. 세수를 하고 화장품을 바를 때면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새살이 돋았.. 더보기 법원은 자꾸 믿어달라고만 하는데... "사건에는 그 시대 텍스트가 투영되어 있다. 한명숙 사건에도 이 시대 검찰수사, 정치인 금품수수, 사법부 판단 같은 텍스트가 담겨 있다. 한 전 총리가 돈을 받았을 지에 초점을 둔다면 그도 돈이 없는 정치인인 이상 어떤 돈을 받았을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어떤 돈을 받았다고 해서 그가 유죄이냐는 별개 문제다. 유죄는 법정에서 위법 사실이 적법한 절차로 확인되고 법리적으로 인정되어야만 하는 사안인 때문이다. 한 전 총리의 유죄가 대법원에서 최종 선고되고도 뒤가 개운치 않은 것은 그런 데에, 특히 수사과정에 문제가 있는 탓이다. 한가지 이번 사건에서 얻은 교훈이라면 검찰의 타깃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한번 수사의 도마에 오르면 헤어나기 힘들고, 시간을 끌어도 통하지 않는 검찰의 힘을 이번 사건은 .. 더보기 0416 평소 택시를 잘 타지 않는다. 술 먹고 밤늦게 들어갈 때가 아니라면, 교통수단은 90% 이상이 지하철 또는 버스다. 그런데 오늘은 급히 이동할 일이 있어서 택시를 탔다. 봄날인데 비는 꼭 장마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이유 모를 기시감을 느꼈다. '그날'이었다. 1년 전 오늘, 나는 그토록 타지 않는 택시를 탔다. 서울 시내에서 이동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서초동에서 단원고로 가야했다. 처음 속보가 떴을 때는 '설마 설마'하는 마음이 컸다. "지금 퇴선방송이 나왔답니다"란 앵커의 멘트에 안심하기도 했다.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500명 가까이 탄 여객선에 무슨 일이 생길까 싶었으니까. '왜 이렇게 오래 걸려' 투덜대며 YTN 화면을 확인하고 있던 택시 속에서 차창 너머로 본 하늘은.. 더보기 탓과 덕 초등학교 5학년 때 반에서 인기투표를 한 적이 있다. '우리 반에서 좋은 남/여학생' 이름과 이유를 함께 적어내는 식이었다. '싫은 사람' 역시 같은 방법으로 뽑았다. 그때 우연히 한 투표용지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다. 순간 당황했다. 거기엔 '싫은 사람 : 박소희'가 적혀 있었다. '이유 : 잘난 척을 해서.' 이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던 일이 떠오를 때가 있다. 학생시절에는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나를 싫어할 수 있겠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가 20년 전의 기억을 환기하는 배경이 바뀌었다. 최소한 요즘만해도, 나는 '내가 뭘 잘못한 건 없을까? 잘못하지 않았나?' 싶을 때 불.. 더보기 이전 1 2 3 4 ··· 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