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애매모호하고 정확한

탓과 덕

초등학교 5학년 때 반에서 인기투표를 한 적이 있다. '우리 반에서 좋은 남/여학생' 이름과 이유를 함께 적어내는 식이었다. '싫은 사람' 역시 같은 방법으로 뽑았다. 그때 우연히 한 투표용지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다. 순간 당황했다. 거기엔 '싫은 사람 : 박소희'가 적혀 있었다.

'이유 : 잘난 척을 해서.'

이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던 일이 떠오를 때가 있다. 학생시절에는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나를 싫어할 수 있겠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가 20년 전의 기억을 환기하는 배경이 바뀌었다. 최소한 요즘만해도, 나는 '내가 뭘 잘못한 건 없을까? 잘못하지 않았나?' 싶을 때 불현듯 그 투표용지에 적힌 활자들이 머리에 콱 박힌다.
​​


'좋은 OO'이 되는 건 단순한 원리를 실천하면 되는 일이라 여겼다. 한 마디로, 나만 잘하면 된다 싶었다. 실상은 아주 많은 도움들이 필요하다는 점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내게는 꽤 충격적이었던 유년 시절의 한 일화를 호출하는 이유가 달라진 것은 이 때문 같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덕'을, '네 탓'을 말하고 있다. 사람은 달라지지 않으니까, 아마 평생 그럴 거다. 요즘 하는 고민 역시 본질은 이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추상적인 말들과 번지르르한 표현으로 감춰지지 않는 이 '구멍'을 나는 알고 있다. 알고 있기에 더 떠벌린다. 나는 이렇고 당신은 저러니 문제라고, 그닥 달라지는 일은 없을 듯하니 이쯤 접어버리자고. 이 말을 할 수 있는 원천은 일종의 '근자감'으로 똘똘뭉친 자아덕분일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도 나는 비슷한 고민응 하며 5학년 교실로 되돌아가리라.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 오늘의 고민이 어떤 식으로 결론나든 내일의 나는 '내 탓'을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네 탓'을 하더라도. 그래야 더 쉽게, 제대로 '네 탓'을 말할 수 있을 테고, 어떻게든 제자리에선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모든 문제들은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만큼 볼 수 있기 마련이니까. 한 발자국이라도 떨어져서 볼 수 있다면 조금 더 좋은 해법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것도 같다. 그게 '관계'니까.

이 그물망을 끊어먹지 않고 잘 이어가는 사람이고 싶다. 자꾸 서성거리게 되는 이유다. 어제처럼, 오늘도.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건너뛰어버렸던 문제를 풀어야할 이유를 알아가는 일 같다.

'애매모호하고 정확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원은 자꾸 믿어달라고만 하는데...  (0) 2015.08.25
0416  (0) 2015.04.16
다시, 세월호  (0) 2015.01.01
어떤 2년  (0) 2014.12.18
사소해서 미안한 사람들  (0) 2014.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