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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변호인>과 용산 “이런 기 어딨어요? 이라믄 안 되는 거잖아요.” 그가 말했다. 탄식처럼 토해낸 한 마디는 그의 인생을 바꿨다. 속물이다, 체면머리 없다는 손가락질에도 돈 버는 일이 더 중요하다던 변호사 송우석의 이야기다. 지난 월요일, 동생을 핑계로 다시 한 번 영화 을 봤다. 여전히 저 한 마디가 가슴에 꽂혔다. 그가 ‘이러면 안 된다’고 한 일은 단순했다. 단골 국밥집 아들 진우는 시국사건에 휘말려 하루아침에 ‘빨갱이’가 됐다. ‘빨갱이’란 이유로 구타와 물고문, 통닭구이 등을 감내해야 했다. 진우 어머니는 아들의 생사도 모른 채 두 달 가까이 부산 바닥을 헤집고 다녀야 했다. 국가권력은 권위를 내세우며 두 모자의 일상을 조각조각 내버렸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81년이지만, 현실은 3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 더보기
참치를 닮은 글쟁이 두 번째 이유는 돈 되는 글쓰기가 아니라 돈이 안되는 글쓰기를 매일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향락이든, 무위이든, 혹은 무의미한 글쓰기든 우리는 돈과 무관하게 매일같이 대가리를 굴리는(마음을 여기저기 쓰는) 버릇을 멈추면 안 된다. 죽을 때까지 헤엄치는 걸 멈출 수 없는 참치처럼 그걸 멈추는 순간 글쟁이는 가라앉는다.- 전성원 편집장 요즘 최대의 고민, 화두. 글에게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려하는 중. 그럼에도 아직은 답답하고 또 막막하다. 가라앉기는 싫은데, 어쩌지. 더보기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 <나인> 이후 이토록 마음이 동하는 드라마는 오랜만이다. 여주인공의 코맹맹이 소리가 가끔 몰입도를 떨어뜨리긴 하지만, 허투루 찍은 한 컷을 찾기 힘든 이야기다. 여기저기서 하도 이야기를 많이 하기에 지난주에 1회를 찾아봤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일인줄 모른 채 ㅎㅎ 결국 며칠만에 16회 정주행을 마치고, 이번주 월요일 17회부터는 본방 사수 중이다. 원인 모를 화재로 아버지가 죽었고, 어머니는 그 일로 실성한다. 역시 반쯤 넋이 나간 형은 "우리 가족 모두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하며 이곳저곳을 떠돌다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눈사태로 숨진다. 기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주인공 박선우의 가족사다. 그런데 형의 시신을 수습하러 간 네팔에서 그는 신기한 향 9개를 손에 넣는다. 정확히 20년 전으로.. 더보기
또 한 명이 죽었다. 내게 공부란 무엇일까. 고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크게 두 가지 감정이 든다. 하나는 '지독하다', 또 하나는 '안쓰럽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2001년의 어느 날,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와 우적우적 빵을 먹는 내게 엄마가 물었다. "서울 갈래?" 대답하기까지 찰나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1년 전부터 '아 서울에 가고 싶다'며 혼자 발을 동동 구르던 나였기에. 그렇게 서울에 왔다. 2001년 7월 17일, 이사를 마치고 "이제 간다"며 아파트 현관문을 나선 아빠의 등을 보자 실감이 났다. 동생과 나, 단둘이구나.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에도 우리에게 아낌없던 부모님을 알기에 참 독하게 공부했다. 전학가기 전날이었던가? "강남으로 간다며? 꼴찌할 각오해야겠다"던 한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불지른 까닭도 .. 더보기
오랜만에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란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려 하지만 점점 생활인이 되어가고 있다. 주말의 절대 존재이유는 늦잠, 휴식이 된 지도 제법이다.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서점에 들러 책을 고르거나 영화관을 찾는 일은 꾸준히 줄어간다. 버리는 일, 비워내는, 쏟아내는 일만으로 가득한 날들 가운데 있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몇 달 만에 공부모임에 나갔다. 을 읽고 만나기로 한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그 약속에 연연했다가 또 다시 불참할 것 같아 일단 발걸음을 홍대로 향했다. 인문카페 '창비'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몇 장 넘겨보긴 했는데, 시간은 빠듯했고 내용은 어려웠다. 또 한 번 '참석'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람들을 만났다. 어색함에 따른 즐거움, 오랜만에 느꼈다. 현상이 아닌 추상을 말하는 .. 더보기
나는 스타벅스에 간다. 카페 라떼를 즐겨 마신다. 단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따금 헤이즐넛시럽을 추가한다. 또 한 번 커피숍에 들어가면 몇 시간씩 앉아 있다 나오기 때문에, 혼자 갈 때면 대개 큰 컵으로 주문한다. 여느 커피전문점보다 쉽게 콘센트를 확보할 수 있고, 인터넷도 사용할 수 있어 스타벅스를 자주 찾는다. 그리고 외친다. "그란데 라떼에 헤이즐넛 시럽 추가요!" 들고 몇몇 스타벅스에서 서너 시간 넘게 틀어박혀 있었다. 아마 상냥한 웃음으로 "네, 고객님"했을 직원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가방 속에, 노트북 안에 그가 일하는 스타벅스를 국내에 들여온 신세계 그룹의 불법행위를 다룬 자료가 꾹꾹 들어 있으리라고는. 한 달 내내 '이마트'를 주어로 한 문장을 수없이 썼다. 선배와 동기의 기사까지 합하면 모두 4.. 더보기
끄적거리다. 새해인데 별 다른 의지 또는 좌절 없이 마음만 휑하다. SNS에 끄적거리던 짧은 글마저 써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무언가 기록을 남겨야 하지 않은가 하는 의무감에 키보드를 두드린다. 나이를 먹는 일은 시간의 길이에 무덤덤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송구영신'은 철저히 관념으로만 있을 뿐, 새 해돋이를 보거나 갓 쪄낸 따끈따끈한 가래떡을 먹거나 하는 일은 거추장스럽고 굳이 찾아나서지 않는 연례행사로 여겨진다. 물론 가래떡은 맛있지만. 요즘은 혼자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지금 진행 중인 일이 끝나면 곧 명절인데, 상황이 어떻게 될 진 모르겠다. 통영 동피랑 마을에 가거나 남도의 따뜻한 곳을 거닐다 모주 한 잔 들이켜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스산한 마음을 데우다보면 봄이 곧 오겠지. 더보기
크리스마스가 딱 한 달 남았다. # 아버지를 이만큼 이해했다 싶으면, 이만큼 이해하기 힘든 일이 생긴다. 다른 건 몰라도 정치 이야기에 있어선 늘 그렇다. 불편하고, 납득 못하고, 때때로 화가 나서 몇 마디 받아치고 싶어도 입술을 꾹 다문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 # 노보에 실을 글을 쓰기 위해 카페를 찾았다. 아이디어만 있고 하나도 나아가지 못한 채 차일피일 미뤄왔는데 결국 마감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날에야 쓰기 시작한다. 한편으론 '나'를 드러내는, 마감과 데스킹에서 자유로운 글을 꽤 오랫만에 쓴다는 기쁨이 있다. 이렇게 글에서 멀어지는 직업이 기자인가 보다. # 어제는 속성으로 과 , 를 봤다. 지난번에 심심해서 역시 속성으로 을 본 뒤 앞 이야기가 좀 궁금했다.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낭만적 사랑에 가슴 설렐 수밖..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