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애매모호하고 정확한

아저씨들이 걸어간다 한 달 넘는 시간을 길바닥에서 보낸 아저씨가 말한다. 15년 동안 휴가 한 번 못 가고, 늦은 퇴근 시간 탓에 아이들 얼굴 한 번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던 아저씨가 말한다. 술자리 하소연에 그칠 게 아니라 좋은 일터를, 진짜 변화를 만들고 싶다고. 5년여 동안 거리에 서있는 아저씨도 말한다. 졸지에 투사가 되어 붉은 띠를 매고 경찰과 싸우다가도 상복을 갈아입고 떠나는 동료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야했던 아저씨가 말한다. 또 하나의 가족, 동료들을 살리고 싶다고. 아저씨들이 뚜벅뚜벅 걸어간다. 2014. 6. 26 더보기
세월호 기획 에필로그 5월 16일 페북과 트위터에 올렸던 글. 1. 기획팀 회의 첫날, 선배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냥도 아니고, "시간을 이기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고민해봐도 다른 아이디어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복기'해야 한다는 생각만 계속 났다. 2. 다음날 구글닥스로 엑셀파일을 만들었다. 목표는 '시간의 재구성.' 일단 4월 16일 상황을 충분히 되짚어봐야했다. 그날 9시 27분부터 16시 35분까지 나온 기사들을 정리했다. 흐름은 보였지만 분단위로 상황을 복기하기엔 자료가 부족했다. 3. 늘 그렇듯 일 하나를 잡아도 다른 일이 생겼다. 셋째날에는 갑작스런 인터뷰 처리에 새벽 3시쯤 귀가했다. 세 시간만 자고 안산으로 갔다. 유가족들의 진도행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4. 비몽사몽한데 계속 눈을 붙일.. 더보기
나의 실수에 관대하지말자 그는 늘 내게 "기준은 엄격하지만, 자신의 오류를 잘 용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매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막상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 일에서 가지치는 문제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늘도 그랬다. 29일 단원고 유가족 대책위 기자회견에 갔다. 대표분의 성명서 낭독이 있었고 열심히 받아쳤다. 하지만 날본을 정리하는 시간보다, 발언 이후 배포받은 성명서를 그대로 치는 게 더 빠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 기자회견 취재 때 성명서와 발언의 취지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발언보다는 문서로 쓰인 쪽이 보다 정리가 된 편이란 판단도 컸다. 어쨌든 오류가 발생했고, 논란이 빚어졌고, 오보낸 기레기가 됐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고, 일종의 해프닝으로 생각했던 것도 맞다.. 더보기
세월호 침몰사고 법적 쟁점들 http://www.ytn.co.kr/_ln/0103_201404240758227166 - 연일 선원들 선장에 대한 이야기들이 추가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만 놓고 봐도 가장 먼저 배에 오른 것도 선원들이었고 가장 먼저 헬기를 탄 것도 선원들이었습니다. 어떤 선장과 선원들에게 어떤 법을 적용할 수 있는 겁니까? "일단 선장의 경우에는 선원법 위반의 문제를 들 수가 있습니다. 선원법에서 복원력과 관계되는 출항 전 검사 의무, 그다음 구조에서 선장의 직접 지휘 의무, 이 사건 선박이 맹골수도를 굉장히 위험한 수로를 통과하면서 3등 항해사에게 맡겼는데 그때의 직접지휘의무, 그다음 재선 의무 그리고 선박 위험 시의 긴급조치 의무 이것들을 위반한 혐의가 선장에게는 추가로 적용될 것이고요. 그리고 3등 항해수와 조타.. 더보기
세월호,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들. 0416 - 사람들은 숫자 하나에 울고 가슴 졸인다. 그걸 알면서도 기자들은 속보를 써제껴버린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에 사람들은 비통해한다. 그걸 알면서도 나도 썼다. 그런 기자들을 사람들은 욕한다. 꺼지라고, 저리로 좀 가라고, 카메라 치우라고... 그저 한 없이 마음이 무겁다. 집계 하나 똑바로 못하는 그지같은 정부 때문에 화도 났지만, 어디 가족들만할까.. 아이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0417 - 전혀 사실과 다른 내용이 돌고 있다. 저 장면은 생존자 학생과 처음으로 전화연결된 어머니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다 떠나서 항상 이런 욕을 먹는 재난취재, 더는 아닌 것 같다. 우리는 기자인데 왜 또 다른 하이에나가 되는가. - 기사를 쓰는 사이에 회사가 사과문을 냈다. 내.. 더보기
꿈을 꿨다. 꿈을 꾼다. 정신없는 하루였다. 오랫동안 신경써온 이슈 하나가 일단락지어졌다. 그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지만. 아무튼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 수사는 '국정원 대공수사국 직원들의 조직적 개입'이란 발톱만한 결론으로 끝맺었고, 이 소식은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근데 한편으론 허탈했다. 오늘 동기는 먼지를 먹으며 일하는 사람들의 기사를 썼다. 취재하느라 밤낮이 바뀐 채 그도 먼지를 먹으며 쓴 기사였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지만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배치도 좋은 위치에 걸렸다. 하지만 검찰 수사 발표로 이 기사는 그 자리를 빼앗겼다. 언론사로서 당연한 선택이겠지만 어쩐지 씁쓸했다. 방금 MBC 다큐스페셜을 시청하는 기분도 비슷했다. 땀 흘린 사람들이 좌절로 내몰리고 있다.. 더보기
2010년 3월 23일 20시 51분의 기록 영화 를 보고 끄적여놓은 글인듯. '분류없음'에 '비공개'로 보관했던 글을 우연히 발견했다. 나중에 다시 보고 마무리해야지. 송두율 교수를 향해 연신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하이에나처럼 달려들던 기자들의 묘한 웃음... 4년 전 그 장면을 볼 땐 섬짓했는데, 지금은 어떨까... =============================================== 이해할 수 없었다. 늘 이해할 수 없던 이야기들만 가득했다. 여기가 아닌 저기는 108지옥에 버금갈 끔찍한 세상, 이 편이 아닌 저 편은 붉은 얼굴과 붉은 생각을 가진 '적'이라고 하는 말들. 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 말과 생각들을 부정하는 건 곧 사회의 적이 되길 택하는 일이었고, 스스로 낙인을 찍는 행위였으니까. 어쨌든 나는 반공교육을.. 더보기
선한 사람들을 믿어보자 묻는 사람, 그리고 듣는 사람. 기자에겐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일이다. 여기서 '듣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묻다'는 합리적 의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둘 중에서 사람들이 흔히 '기자' 하면 떠올리는 덕목은 아무래도 '묻다' 같다. 최근 화제였던 오바마 미 대통령의 G20 기자회견 동영상에서도 한국 기자들이 '무능력하다'고 비판받은 가장 큰 이유는 질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니까. 언젠가 읽었던 김종배씨 책에서도 뉴스를 볼 때 '합리적 의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 뉴스를 만드는 기자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정치인에게, 검찰에게 기자들이 자꾸 묻는 이유도 같다. 선출받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들은 '가진 자'다. 한 사람의 일생은 물론 사회를 흔들 수도 있는 힘말이다. 법조팀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