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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2010년 3월 23일 20시 51분의 기록

영화 <경계도시2>를 보고 끄적여놓은 글인듯. '분류없음'에 '비공개'로 보관했던 글을 우연히 발견했다. 나중에 다시 보고 마무리해야지. 송두율 교수를 향해 연신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하이에나처럼 달려들던 기자들의 묘한 웃음... 4년 전 그 장면을 볼 땐 섬짓했는데, 지금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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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계도시2' 포스터 ⓒ 감어인필름


이해할 수 없었다. 늘 이해할 수 없던 이야기들만 가득했다. 여기가 아닌 저기는 108지옥에 버금갈 끔찍한 세상, 이 편이 아닌 저 편은 붉은 얼굴과 붉은 생각을 가진 '적'이라고 하는 말들. 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 말과 생각들을 부정하는 건 곧 사회의 적이 되길 택하는 일이었고, 스스로 낙인을 찍는 행위였으니까. 어쨌든 나는 반공교육을 받았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친 탓에 입이 찢어진 채 죽음당했다는 이승복 어린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했고, 낡은 흑백필름 속에 담긴 전쟁의 포화를 감상하며 '북괴'를 미워했다. '반공 표어 짓기, 포스터 그리기대회'에서 받은 상장은, 오래된 파일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건 현실이다. 아직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독하게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현실. 남과 북이 갈라진 동족상극의 비극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헌법으로 사상의 자유를 보장함에도 단 하나의 사상만큼은 절대 허용할 수 없는 모순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그냥 이건 현실이라는 것, 아직도 그렇다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다. 사상의 시계는 고장난 것마냥, 몇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 시계는 7년 전, 마지막 남아 있는 배터리 용량을 다 쥐어 짜낸 걸지도 모르겠다. 2003년 가을, 재독 학자 송두율 교수가 비행기 게이트를 나와 고국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오늘은 (체포영장을) 집행하지 않겠다"고 검찰쪽에서 말하던 그 순간부터 시계는 애쓰고 있었다. '건국 이후 최고 거물 간첩'이라는, 그야말로 손에 땀이 고이게 하는 역동적이고 극적인 퍼포먼스를 펼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노력은 나름 성과 있었다.


영화' 경계도시2' 한 장면 ⓒ 감어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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