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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무관심한 사람들과 눈을 맞추다

# 평소처럼 교대역 2호선 개찰구로 향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많은 인파들을 피해갔다. 평소처럼 쓰레기통도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순간 멈칫했다. 분주하게 쓰레기를 정리하는 환경미화원 옆에는 웬 할아버지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는 쓰레기더미를 헤집으며, 다른 한 손으로 ‘초코에몽’을 움켜쥐고 있었다. 낡은 빨대는 입 안에 들어가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을 초코우유를 목마른 짐승마냥 쪽쪽 빨아대며 그는 또 다른 마실거리를 찾고 있었다. 노숙하는 사람들,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은 수없이 봤지만 거기서 찾아낸 음료를 마시는 사람은 처음 봤다. 순간 흠칫했다.


# 평소처럼 이수역 14번 출구 앞을 지나고 있었다. 평소처럼 태평백화점 앞은 북적거렸다. 평소처럼 인파를 헤쳐가다 순간 멈칫했다. 150cm 중반정도로 작달막한 키에, 통통한 체격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의미 없는 눈빛 교환이었지만, 곧바로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다소 초점을 잃은 듯한 눈동자를 가진 그 남자는 다운증후군 환자였다.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주름져 있었고, 머리칼도 드문드문 하얗게 바래져있었다. 그 남자는 중년의 다운증후군 환자였다. 잠깐의 마주침은 찰나였고, 그는 터벅터벅 제 갈 길을 갔다. 어쩌면 의미 없는 눈빛 교환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당황함과 놀라움이 뒤섞인 내 눈동자가 그에게는 이미 무뎌진 일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순간 흠칫했다.


ⓒ Arman Zhenikeyev


# 무관심이 익숙했던 이들이 눈을 맞추는 것은 서로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굳이 관심 갖지 않아도 될 관계라 여긴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교대역에서, 이수역에서 만난 그들과 나 역시 사정은 같았다. 


하지만 막상 그들과 눈을 맞추고 나니 누군가의 목마름, 누군가의 늙음은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당했구나 싶었다. 우리는 ‘평소처럼’ 살아가지만, 그 일상에서 너무 쉽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사람들이 많다. 아니 부지기수다. 노숙인, 장애인이라면 시선에서 지워지기 더욱 쉽다. 그들의 비참함 역시 쉽사리 망각의 대상이 된다. 약자들이 단지 힘이 없어 약자일까. 그들은 기억되지 못하기에 약자다.


복지니, 공동체 의식이니 하는 거창한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의 목마름과 늙음은 온전히 저들만의 책임일까 하는 오랜 물음이 다시 떠오른 기억을 남겨둘 뿐이다. 애당초 그 질문을 시작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잊어버리고 지나치는 일상을 살아가는 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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