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으로 크게 다친 것은 5-7살 무렵이었다. 동네 언니 집에 놀러갔다가 계단에서 발을 헛딛었고, 넘어지면서 날카로운 계단턱에 부딪쳤다. 피를 제법 많이 흘렸던 것 같다. 어떻게 집에, 병원에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넘어지던 순간 계단의 느낌은, 그 질감과 모양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처음으로 큰 흉터도 얻었다. 왼쪽 눈가가 찢어져 몇 바늘을 꿰매야했고, 꽤 오랫동안 한쪽 눈가가 울퉁불퉁한 사진을 남겨야 했다. 20여년이 흐른 지금에는, 누군가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면 모를 정도로 상처는 아물었다. 비슷한 시기에 다친 턱 밑 흉터도 사정은 비슷하다.
하지만 남들이 잘 보지 못할 뿐이다.
내 자신은 매일 거울을 볼 때마다 확인한다. 세수를 하고 화장품을 바를 때면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새살이 돋았고,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흉터는 여전하고 나는 다쳤던 순간을 기억한다.
사실 흉터가 겁나진 않았다. 그런 상처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분명 상처가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남들의 시선도 중요하지만, 내 원칙이 맞다면 괜찮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누군가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도 정당한 이유를 믿고 실행해야 한다고 봤다.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결국 그 일들은 내게도 상처가 된다. 요며칠이 그랬다. 비난이나 원망이 두렵진 않았다. 그 감정들보다 중요한 원칙이 있다고 여겼다. 이 생각 또한 변함이 없다.
다만, 상처가 났다.
새살이 돋겠지만 흉터는 남는다. 아픔의 생생함도 쉽사리 잊히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 어디까지 감당해야 할까. 아니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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