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애매모호하고 정확한

그 누구도 일러주질 않았네

공부를 잘했다. 똑똑하고 모범적이라는 칭찬은 밥 같았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에 갔다. 꽃 피는 봄, 뜨거운 여름, 아름다운 가을과 겨울을 즐기는 일만 남은 줄 알았다. 그렇게 낭만에 젖은 날들을 상상하며 부풀어 있던 19살의 꿈은 첫 수강신청일에 산산이 부서졌다. 19학점을 들어야 했다, 10과목씩. 미적분에 물리, 화학, 생물 수업도 모자라 1학점짜리 실험 과목만 세 개였다. 매주마다 각 실험의 예비·결과리포트를 써야 했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과목별 연습문제에 비하면 그 강도는 애교였지만, 무조건 리포트 6개는 완성해야 한 주가 마무리됐다. 그때처럼 지겹게 MSN 로그인을 하던 시절은 두 번 다시 없다. 과제들이 겹치면 새벽 한 두시까지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머리는 맑게 하려 발버둥쳐야 했다.


영화 '세 얼간이' 중에서


억울한 건, 그 시간들에 쏟아부은 청춘이 아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과제가 괴로웠지만, 불행하게 만든 건 아니다. 상처는 다른 곳에 있었다. 대학생활을 꿈꾸던 시절의 희망은, 그 때만큼은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은 채 온전한 나로서 살아가게 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에서 싹텄다. 마냥 움츠리거나 상처받을 일이 있을 줄 상상 못했다. 하지만 내 생애 최초의 좌절을 맛본 것은 그때였다. 첫 시험의 평균은, 40점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내 점수가 그 언저리였는지는 모르겠다. 충격이었다. 말도 안 되는 숫자라고 생각했던 게 내 공부값이었다. 그 속에서도 평균보다 까마득하게 높은 자리를 차지한 이들도 있었다. 용납하기 힘들었던 건, 내가 그 자리가 아닌 낮은 곳에 있다는 현실이었다.

우울의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던 그 시절의 이유는 사실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만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일은,  그 좌절감이 생각보다 나를 크게 흔들었다는 점이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때였다. 한 번은 새벽 세 시가 넘어서 간신히 잠들었다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지각한 적이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은 '1분 지각에 1점씩 마이너스'라며 깐깐함을 자랑하던 조교가 수업에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100분쯤 늦었을까? 게다가 실험마저 일찍 끝나서 몇몇 동기들은 뒷정리까지 끝마치고 나간 터였다. 수면부족으로 멍하고 어지러운 상태에서 비틀거리며 실험실 밖으로 나왔다. 건물 옆에 쪼그리고 앉아 엉엉 울면서 휴대폰을 열었다. 도저히 학교를 못 다니겠다고. 수화기 너머로 어쩔 줄 몰라하는 아버지에게 계속 그 말만 되풀이했다. '-100점'이란 낙인이 찍힌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음이 임계치를 넘어섰다. 다시 학교에, 공부에 애정과 흥미를 붙이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과학영재들이 모였다는 카이스트에서 네 명이 목숨을 끊었다. 서남표총장의 개혁이 낳은 비극이라거나 20대의 나약함을 보여준다는 의견 모두 맞다. 하지만 후속대책을 논의하는 방향이 자꾸 '서남표 몰아내기'에 치우쳐가는 느낌이다. 징벌적 등록금제, 100% 영어강의 등 제도적 문제는 분명 있다. 무한경쟁의 결과인 것도 사실이다. 근데, MB식으로 말하긴 싫지만, '내가 해봐서 아는데', 제도와 경쟁보다 힘들었던 건 '추락'한 현실이었다. 공부를 잘하고, 모범생으로 살다 좋은 대학에 들어오면 더 높이 훨훨 나는 일만 있을 줄 알았다. 비슷한 생각을 품고, 비슷한 능력을 가진 친구들이 모인 곳이 대학이었다. 그 중에서 훨씬 뛰어난 사람도 있었다. 많은 걸 이루고 싶은데, 계속 높은 곳에서 비상하고 싶은데 분명 내 깜냥이 모자란 부분이 있었다. 견디기 힘든, 인정하기는 더더욱 괴로운 일이었다.


카이스트 교내 촛불집회


더 높이 날 수 있다고 믿은 만큼 '넌 그럴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느 순간 추락할 때도 있는 법인데, 그러다 다시 날 수도 있는 건데 그런 말은 없었다.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 떨어지는 법을 알았다면... 적어도 '더 이상 날 수 없다'며 자신을 책망하고 모든 걸 놓아버리는 일은 조금 더 늦은 선택이지 않았을까? 이미 가능성이 제로가 되어버린 일을 상상하며 짜맞추기할 수 없겠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떨어질 수도 있음을 알았다면 적어도 지금의 청춘들이 덜 아프고, 덜 무력해지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든다. 뒤틀고 거친 바둑판이 높은 값을 받는다고 한다. 잡초가 온실 속 화초보다 더 오래 간다. 아파도 괜찮고, 아파야 괜찮아진다.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지나올 때까지 그 어떤 선생님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 어떤 교과서도 말해주지 않았다. 징벌적 등록금제를 철폐하고 영어강의를 줄이면, 학업 부담감과 스트레스는 자연스레 줄어든다. 하지만 날지 못하거나 떨어질 때도 있고, 그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려준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잘한다 잘한다' 소리를 듣고 자란 사람일수록 더 필요하다. 잘하는 사람만 원하는 세상은, 잘할 것 같은 사람과 잘하는 사람을 너무 깨지기 쉽게 만드니까.


'애매모호하고 정확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문을, 책을 보다가도  (0) 2011.06.06
Glee, Don't stop believing  (0) 2011.06.02
우리는 단지 운이 좀 달랐을 뿐이다  (0) 2011.02.27
'생각하는 대로', 쉽지 않다  (0) 2011.02.06
기분 좋은 상상  (0) 2011.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