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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생각하는 대로', 쉽지 않다 심장이 두꺼운, 쉽게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다짐을 오래토록 되뇌이며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생각만큼 강해지지 못한 탓에 끊임없이 마음이 어지럽다. 가슴 중턱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 얹어 있는 느낌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것 같아 조금은 두렵다. 신경쇠약에 시달리지 않는단 사실에 안도해야 하는 걸까.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아니었기에, 그저 어느 날 골목길에 부딪치던 바람이 일깨워준 꿈이었기에 그런 걸까. 오히려 갈수록 무덤덤하고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기분이다. 모든 장면과 사람에게서 의미를 찾고 분석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냥 즐겁지 않으니까, 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막막하다. 이 감정을, 끊임없이 목구멍응 태우는 갈증을 해소할 길을 다른 누구에게서도.. 더보기
기분 좋은 상상 읽고, 쓰고, 생각하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된 건 행운이지 싶다. 여러가지 상황이 작용했지만, '절제'를 당연시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영향도 크다. 물욕을 금기시하는 수도자마냥, 유일하게 맘껏 소비할 수 있던 것은 책이었다.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책들로 가득 찬 공간에서 있으면 참 설랬다. 한창 음악 듣기에 열 올렸을 때엔 2순위로 밀리긴 했지만, 애정도 순위가 그 아래로 떨어진 적 없는 유일한 대상도 책이다. 변하지 않은 꿈 하나도 책과 연관된 일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에 나오는 거대한 서재. 그게 내 오랜 꿈이다. 7살인가 8살 때 처음 종로 교보문고에 간 날. 장차 이보다 더 거대하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서점의 주인이 되리라 다짐했다. 나이를 하나 둘 먹.. 더보기
민우슈퍼도 좋고 스타벅스도 좋은데 언젠가부터 우리는 별 다른 이유가 없으면 '민우슈퍼'에 간다. 아마도 아들의 이름을 따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름의 그곳에 가는 시각은 대개 밤이다. 우리의 주된 구입품목이 주류와 과자 등등인 이유다. 언젠가 지하철에서 광고를 뚫어져라 보는 그를 보며 웃은 적이 있는데, 텔레비전이 일상에서 사라진 후로는 나도 모르게 브라운관과 마주치면 그처럼 행동하고 있다. 하여 우리는 민우슈퍼의 계산대 위에 맥주와 과자 등등을 주섬주섬 올려놓고, 우유 냉장고 위에 있는 텔레비전을 뚫어져라 본다. 이따금 주인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지금 나오고 있는 프로그램(대개 드라마다)의 캐릭터를 가리켜 "저러면 안 되는데, 아휴 쟤는 지난 번에도 어쩌더니"란 설명을 한다. 검은 비닐봉지를 가득 채우고 나올 때까지 아주머니의 설명은 계.. 더보기
달의 뒷면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 쪽만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 장 그르니에, 중에서 스티븐 보즈워즈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1년 전 방북했을 때, 미국의 한 관계자는 그가 '달의 뒷면(the dark side of the moon)'으로 들어갔다고 표현했다. 박민규는 소설 에서 "달의 뒷면처럼 어둡고 어두웠던", 하지만 사랑받음으로 "체온"과 그를 둘러싼 "세상의 기후"가 바뀐 여자에 관해 이야기한다. 클리셰다. 하지만 클리셰가 클리셰로서 그 오랜 생명력을 자랑하는 이유는, 그만큼 일상의 순간순간에 맞아떨어지는 표현도 없어서일테지. 관계에서도 달의 뒷면이 존재하듯, 세상.. 더보기
In other words 기자가 되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요즘에는 내가 참 쉽게 생각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정의감보다는 세상의 변화를 믿어서 시작했고, 나름 쌓아온 자아랄까 내공이랄까 하는 면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직업이라기보다 그냥 '직업중 하나'란 느낌도 있었지만 이래저래 내게 잘 맞는 옷이라 믿었다. 근데 그 옷이, 내 예상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상상만큼 단순하고 편하지 않다. 가격과 디자인에 별 신경쓰지 않았는데, 그 차이가 크고 나도 그걸 의식하고 있다. 단지 기자가 되는 게 목표가 아니다. 하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의 몫을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기에 너무 큰 그림만 생각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또 그래서 더 고민하고, 섣불리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은.. 더보기
- 해마다 반복되는 몸싸움과 난장판. 그것이 절박감의 표현이든, 거수기의 상징이든 간에 한국 정치의 고질병임은 틀림없다. 물론 원인제공자는 여당, 그리고 VIP가 분명하다. 명분 없고, 논리도 부족한 강행처리를 이해할 수 없다. 이건 철저히 다수당 독재로 가겠다는 의지 표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공정한 사회'따위를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 공허한 말이 알맹이들로 채워지길 빌었다. 정쟁(政爭)이 넘치는 순간이 있었지만 논리와 합리로 맞서는 장면을 목격했기에, 생각보다 괜찮구나 여겼는데. 물론 계수소위원 개개인들만을 탓할 수 없고, 지도부만 그리고 모두 MB 책임으로만 할 수 없다. 하지만 말과 말이 오가기보다 힘과 힘, 이익과 이익만 오가는 이 현장이 나는 구토가 난다. 이성의.. 더보기
1막, 끝 숨이 콱 막혀왔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다. 한 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정상이라고 믿었으니까. 근데, 발을 헛딛었고 너무도 무서운 속도로 굴러떨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시 바닥이다.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다. 원인 모를 두통 때문에 머리가 아팠고, 종일 마음에 큰 돌덩이 하나 안고 지냈다. 그래도 울고 싶진 않았다. 다만 힘들었던 건, 정상을 코앞에 두고 넘어졌다는 당혹스러움. 그리고 약간의 참담함. 그래서 괜찮지 않다. 괜찮아지고 있는 것일뿐이다. 하지만 괜찮아진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그냥 기다리고 있다. 무얼 해야 할까, 뭐가 필요한 걸까.. 그런 고민들은 계속 될테고 실패 혹은 열정의 강렬함을 느껴보고 싶다는 갈망들은 커져가겠지. 시간의 흐름에 대한 두려움도 그럴테고.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조.. 더보기
나의 소소한 연애에 대하여 "글을 쓰고 싶어"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문득 박민규가 생각난다. 김혜리 기자 인터뷰집에서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주소가 kenjune이라고 하자, ken은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고 june은 그와 연인 관계인 여성 캐릭터라며 한창 아내를 혼자 좋아할 때 둘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만든 아이디라고 했다.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는 식으로 묘사됐던 것 같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그의 소설의 모티브 역시 아내였다. "(못생겨져도).. 절 사랑해줄 건가요?" 어느 오후, 식어가는 커피 한 잔을 두고 그의 아내가 말했다. 「이런, 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준 아내에게」 이건 그의 답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연애란 참 우습게 시작되었다. 어느 가을날에 버스정류장, 자신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