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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나의 소소한 연애에 대하여

"글을 쓰고 싶어"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문득 박민규가 생각난다.

김혜리 기자 인터뷰집에서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주소가 kenjune이라고 하자, ken은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고 june은 그와 연인 관계인 여성 캐릭터라며 한창 아내를 혼자 좋아할 때 둘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만든 아이디라고 했다.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는 식으로 묘사됐던 것 같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그의 소설의 모티브 역시 아내였다. "(못생겨져도).. 절 사랑해줄 건가요?" 어느 오후, 식어가는 커피 한 잔을 두고 그의 아내가 말했다.

「이런, 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준 아내에게」

이건 그의 답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연애란 참 우습게 시작되었다. 어느 가을날에 버스정류장,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김치통 때문에 쩔쩔매던 스물한살의 여자와 그 모습이 신기했던 스물다섯살의 남자. 시간은 어느덧 나를 그때 그의 나이로 만들었고, 우리는 지금 함께다.
모든 연애가 통속적이듯,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때도 있고, 위기 직전의 상황도 있고, 못 견디게 마음 아픈 때도 있고 그런 평범한 연애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

식어가는 커피를 앞에 두고 각자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이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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