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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하품만 나는 목요일, 기차 안에서 달리는 기차 안이다. 아침을 챙겨 먹었는데도 허기지다. 요즘엔 머리를 많이 써서 탄수화물이 금방금방 포도당으로 바뀌어 소비되는지 밥때면 힘들 정도로 배고프다. 지금도. 내일이면 2주 간의 사회부 교육이 끝난다. 생각보다 정신없었고, 성과가 있어 부뜻했고, 몸이 힘들었다. 그래도 '현장에 있다'는 만족감이 가장 컸다. 입사 준비할 때 하도 '현장 가고 싶다'는 노래를 해서 그런가보다. 한편으론 '현장 이상'의 무언가를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건사고가 터지지 않는 이상 아이템을 잡아야하는데, 꽤 곤혹스러웠다. 뻔하지 않는,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거나 알아야 할 이야기를 찾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모르던 점도 아닌데 막상 실전을 경험하니 느낌이 다르다. 하루하루 뭔가를 토해내야 하는.. 더보기
'부끄럽다'는 말 "그럴 리 없는데요? 다 확인했는데요?" 며칠 전 취재원에서 정정요청이 들어왔다. 혼자 속으로 피식 웃었다. 대꾸하며 내용을 살펴봤다. 아뿔싸, 내가 틀렸더라. 그것도 아주 중요한 부분을. 수정 사실을 전하며 사과했다. 잘 넘어갔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찔했다. '만약 더 큰 문제로 번질 수 있었다면? 더 큰 회사였다면?' 둘 중 하나였을테다. 소송을 당하거나 처음부터 정중히 사과하거나. 문정현 신부님이 '인간, 그게 뭔데?' 했는데, 난 '기자, 그게 뭔데?' 싶었다. 며칠이나 됐다고, 미친 건가 싶었다. 두고두고 부끄러울 일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오늘 만난 분에게 친한 척할 셈으로 "날씨가 이런데, 어떠세요?"라고 물었다. 대뜸 "그런 뻔한 질문할 거면 묻지 마라"는 '칼'이 날아왔다. ".. 더보기
진달래능선 따라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있나요?” 휴대용 스피커를 주머니에 넣은 할아버지는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흥얼거리고 있었다. 오연호 대표가 물었다. 황학시장에서 3만원을 주고 음악파일 600개를 담은 할아버지의 MP3 플레이어에는 없는 곡이었다. 북한산 진달래능선에 이름 모를 트로트 가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봄날이 가고 있었다. 18일 다섯 동기, 오 대표와 산에 올랐다. 행사명은 ‘대표 특강’이었다. 구름 덕분에 봄볕이 적당했고, 중간 중간 거친 숨을 가다듬을 때면 바람이 불었다. 곳곳에 핀 연분홍 진달래꽃을 지나치기 힘들었다. 어린 아이처럼 꽃을 꺾어 머리에 달았다. 발 디딜 틈 없이 매끄러운 비탈길을 오르고, 크고 작은 돌덩이를 조심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차려입은 사람들, 훈련 중.. 더보기
결국 중요한 건, "시험 보고 이대 캠퍼스에서 한낮에 맥주 한 캔 마셨던 생각나네." 축하와 함께 형진오빠가 남긴 말. 벌써 몇 년 전이냐, 조선일보 시험 본 날일 거다. 그날로부터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 기대 이상, 아니 상상 이상으로.무난한 인생이어서, 물 흐르듯 살아왔다. 합격하지 못했을 뿐, 준비 기간 동안 어쨌든 좋은 평가를 받은 날들도 많았고 운도 따라줬다. 그래도, 쉽지 않았다. '나의 실패'를 인정해야 했고, 그래야만 한 번 넘어져도 또 일어날 수 있었으니까. 겪고 또 겪어도 참 적응 안 되더라. 지금도 조금 얼떨떨하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그대로 내 상황이어서. 속상해서 울기도 했고, 술도 들이마셨다. 오늘 아침, 첫 날숨에서 역한 술냄새가 날 정도였다. 머리도 띵했다. 근데 분명한 건, 내 '잘못'은.. 더보기
오르막 인생 온몸이 떨린다. '설렌다'는 말로는 부족하다.다가가고 있다. 더디게만 느껴졌던 걸음이었는데, 그래도 계속 걸어온 덕분이었다. 한동안은 비탈길을 데구르르 구르는 것 같았고, 비포장도로 위를 맨발로 내딛는 느낌이었다. 쉬운 순간들보다, 쉽지 않았던 때가 많았고 이런 상황을 용납할 수 없어 '내가 왜?'를 외쳤던 날들이 빈번했다. 간절하지 않았다. 다만 원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선택은 내 몫이었고, 비판과 훈계, 충고들을 비판하는 일 역시 그랬으니까. '환상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환상이 '적었던' 만큼, 바랐다. 내가 꿈꾸는 일이 내 것이길, 어서 잡을 수 있기를. 힘들었다. 정상 근처에서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진 것 같은 날들도 많았다. 울기도 했고, 소리치기도 했고.. 더보기
우리는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까 얼마 전 영화 과 을 연달아 봤다. 의 경우 조금 복잡다양하지만, 어쨌든 둘의 공통 분모는 '여성의 욕망'이랄까. '보기 좋은' 삶을 유지하려 애쓰면서도, 절제할 수 없는 뜨거운 무언가를 원하는 의 혜정(장서희)이나, 나를 만족하는 삶을 당당히 표현하는 의 지수(엄지원)와 순심(심혜진), 자혜(백진희)의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저건 영화잖아' 정도로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을 보면서 더. 영화 자체가 코믹하게 '성적 취향들의 행진'을 그려서이기도 하지만, 저정도로 솔직한 게 과연 가능할까 라는 의심이 컸다. '직업적으로 인정받는 데다 행복한 가정을 꾸린 잘 나가는 교수'의 삶을 포기할 수 없으면서도 '해방보지'란 아이디로 인터넷의 바다를 누비며 어린 제자(우상-정석원)과의 사랑을 꿈꾸는.. 더보기
- # "그렇다면 우리 몸에 절대 필수적인 것은 따뜻함을 유지하여 몸 안의 생명의 열을 지속시키는 일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중에서 # 잊지 않고 찾아오는 계절처럼, 간절기의 미영처럼 일말의 우울과 무기력함 혹은 아무 것도 아닌 상태가 온다. 글을 써야 한다. 그런데 쓸 수 없다. 한 번 엉키기 시작한 생각의 실타래는 비탈길을 구르며 더욱 얽혀버린다. 무엇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까. # 여백 있는 삶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나는 단 한 번도 여백을 택한 일이 없다. 늘 인생의 페이지는 무수한 글자들과 해석할 수 없는 단어와 그림들로 뒤죽박죽, 하지만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일상의 여백이 많아진 시간들에는 그 '견딜 수 없는 불안'을 채우기 위해 나는 또 다른 무언가를 찾고 있었고. 지금은 애매모호하.. 더보기
당신의 독자가 되어드릴게요. 최근에 깨닫게 된 건데요.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해요. 돈이 많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나도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데요, 이를테면 소설이 점점 좋아지는 작가? 자기 기만적이지 않은 작가? 60이 넘어서도 괜찮은 작가? 그런데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대신에 우리는 서로에게 상대방이 원하는 삶을 살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원하는 사람이 되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독자란 무엇인가 하면요.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내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인 거죠. 굉장히 밀접한 관계라는 걸 알았어요. 내가 도움을 청할 사람들은 이 사람들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