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깨닫게 된 건데요.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해요. 돈이 많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나도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데요, 이를테면 소설이 점점 좋아지는 작가? 자기 기만적이지 않은 작가? 60이 넘어서도 괜찮은 작가? 그런데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대신에 우리는 서로에게 상대방이 원하는 삶을 살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원하는 사람이 되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독자란 무엇인가 하면요.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내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인 거죠. 굉장히 밀접한 관계라는 걸 알았어요. 내가 도움을 청할 사람들은 이 사람들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놀랍죠. 다 내가 하는 건 줄 알았는데
- 소설가 김연수, 어느 인터뷰에서
동생과 아이돌 이야기를 하고, 엄마가 끓인 찌개 간을 보고, 아빠에게 '한의원 좀 가라고' 핀잔듣는 일들이 늘었다. 정겨운 만큼, 지겹고 화날 일도 늘어간다. 부모님과 그럴 나이야 한참 지났으니, 화살은 대개 막내 동생을 향해 있다. '때리지 않기, 날선 말들 함부로 하지 않기' 등 몇 가지 원칙을 갖고 동생을 존중하려고 하는데 역시 쉽지 않다. 수학문제 하나 버벅대는 모습조차 참기 어렵다. 물론 십여 년 전 미희 공부를 봐주며 싸울 때와는 인내심의 크기가 바다처럼 넓어졌지만 말이다.
결국 오늘 한 건 했다.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건 며칠 전이다. 가까스로 평화협정을 맺고 휴전 체제로 들어가나 했는데 아니었다. 원칙 하나는 지켰다. 하지만 손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매를 들지 않는다고 비폭력은 아니다. 나는 오늘 '말'로 충분히 동생을 때렸다.
마음이 안 좋아서 일부러 밖에서 보자고 했다. 햄버거가 먹고 싶다며 조르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5200원짜리 상하이 스파이스 치킨버거세트를 뇌물로 바치며 동생에게 사과했다. 동생은 기분이 어느 정도 나아진 상태였다. 친구와 수다를 떨고, 마음에 뒀던 옷들을 구경하며 한 판 풀고 난 후 만났으니까. 한때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기가 참 어려웠다. 입이 잘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입술을 오므려 첫 소리를 내고, 이와 혀로 중간소리를 뱉은 후 다시 입술을 오므려 마지막 소리를 꺼내고 나면 다음 일은 더 쉽다. 그렇게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언니가 미안해."
입가에 빵 부스러기를 묻힌 채, 햄버거를 우적우적 씹으며 동생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늘 다짐한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기보다, '어떤 사람'이 되도록 내가 도와줘야겠다고. 머리는 쉽고, 행동은 어렵다. 상상과 상황은 어긋나기 마련이다. 내일이면 또 다시 나는 "5분만 더"라는 간절함을 무시하고, 수학문제집 유형편과 주니어 리딩튜터, EBS 방학특강 문제집을 풀라고 닥달하는 무시무시한 괴물언니가 될 것이다.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맨날 나한테만 뭐라고 한다"고 투덜댈 막내동생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가 서로의 소설을 한 장 한 장 넘겨볼 때, 각자 원하는 내용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탠 '독자'로 남았으면 싶다. 아직은 먼 이야기일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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