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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우리는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까

얼마 전 영화 <페스티벌>과 <사물의 비밀>을 연달아 봤다. 
 

영화 <사물의 비밀>

<페스티벌>의 경우 조금 복잡다양하지만, 어쨌든 둘의 공통 분모는 '여성의 욕망'이랄까. '보기 좋은' 삶을 유지하려 애쓰면서도, 절제할 수 없는 뜨거운 무언가를 원하는 <사물의 비밀>의 혜정(장서희)이나, 나를 만족하는 삶을 당당히 표현하는 <페스티벌>의 지수(엄지원)와 순심(심혜진), 자혜(백진희)의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저건 영화잖아' 정도로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페스티벌>을 보면서 더. 영화 자체가 코믹하게 '성적 취향들의 행진'을 그려서이기도 하지만, 저정도로 솔직한 게 과연 가능할까 라는 의심이 컸다. '직업적으로 인정받는 데다 행복한 가정을 꾸린 잘 나가는 교수'의 삶을 포기할 수 없으면서도 '해방보지'란 아이디로 인터넷의 바다를 누비며 어린 제자(우상-정석원)과의 사랑을 꿈꾸는 혜정의 모습이 차라리 현실적이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는 두 영화의 막을 내렸다. 가끔 '형식적인 영화 리뷰 쓰기'의 압박에 시달렸을 뿐.

갑자기 이 영화들이 다시 떠오른 건 최근 일이다. 늦은 밤 편의점에 갔다, 콘돔을 사러.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내가 가야 했다. 사실 무척 부끄럽고 싫었다. 게다가 그날 따라 편의점엔 종업원부터 손님까지 남자들만 득실댔다. 욕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편이어서 '젠장'이란 말조차 어색한 입을 가졌다. 하지만 그날밤, 내 머릿 속은 온통 '젠장'이란 단어로 가득했다. 다른 손님이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 천천히 물건을 고르는 척했는데, 웬 걸? 그 남자는 한참 컵라면 먹는 테이블에 기대있었다. '별 수 없다'는 생각에 잰 걸음으로 계산대에 갔다. 편의점 알바는 혼자가 아니었다. 계산대 뒷편 구석에 누군가 쪼그리고 앉아 그와 대화 중이었다. '젠장' 또 한 번 속으로 내뱉었다.  

영화 <페스티벌>

캔맥주와 요구르트 음료, 그리고 콘돔이 든 비닐봉지를 덜렁이며 집으로 왔다. '젠장'을 외친 횟수만큼이나 민망했다. 하지만 현관문을 닫는 순간 생각했다. 


'내가 왜 부끄러워하지?'

가만 보니, 슈퍼나 편의점에서 서슴없이 생리대를 구입하게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검은 봉지에 담아드릴까요?"라는 물음에 "아니요, 괜찮아요" 답하게 된 것 말이다(물론 그 이유는 당당함 때문만은 아니라, 집에 봉지가 늘어나는 게 싫어서도 있다). 감추는 것이, 은밀하게 하는 일이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졌지만 아니었다. 가임기 여성이라면 월경은 누구나 겪는 일이고,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섹스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어디 가서 이 단어의 시옷도 쉽사리 내뱉지 못하리라 생각한다만, 그것은 부끄럽거나 감춰야 할 죄는 아니니까. 하지만 우리는 성(性)을 감추는 데 훨씬 익숙하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여자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배웠다. 어쩌면 이 글을 볼 누군가도 '알 만한 처녀가 미쳤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구호처럼 '프리섹스를 허하라'고 외칠 뜻도 없다. 다만 '내가 왜?'라고 느꼈던 그 의아함을, 그 부자연스러움을 기록하고 싶을 뿐이다. 피임기구를 구입하는 여성이 까닭모를 수치심에 얼굴 벌개지지 않도록 세상이 변하길 바라는 작은 소망이 있기는 하다(물론 '그건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란 아름다운 구호 또한 잘 알고 있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우리, 좀 더 솔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사람이랑은 어땠느니, 나는 그게 좋았다느니 하는 얘기까지야 바라지도 않는다. 아니 할 자신이 없다; 다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그 표현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하는 것을 색안경 끼고 보지 않았으면 좋겠달까..? 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덜 부끄러워하기'정도이지 않나 싶다. 일단 이 글은 그 시작이다. 


뱀발) 그리고, 어쨌든 안전한게 좋지 않은가!!
뱀발 하나더) 나중에 자식, 아니 우선은 막내동생이 성인이 되면 꼭 당부해야겠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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