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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안녕, 또 안녕


'Merry X-mas'의 X는 그리스어 ‘ΧΡΙΣΤΟΣ’(그리스도)의 앞글자를 딴 것이란다. 상상할 수 없는, 짐작하기 어려운 신의 존재라는 뜻으로 미지수 X를 붙인 게 아니었을까 했던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예수의 탄생일을 알 수 없어 미지수를 붙였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다 하니, 내 상상력은 조금 평범한 것 같기도. 

스물여섯살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새벽 4시 45분부터 시작됐다. 부시시한 모습으로 단장을 마치고, 우걱우걱 카스테라를 씹어 삼키며 주린 배를 채우고, 어색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쳐다보며 횡설수설하고, 밤새 내린 눈이 녹아 얼어붙은 인도를 아장아장 걸으며 반나절을 보냈다. 이브인데다 때마침 토요일이어서 교보문고는 예상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언제였더라? 크리스마스 때였나, 섣달 그믐날이었나 이맘때쯤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아 다시는 이때 안 온다!" 다짐했는데 결국 제자리였다. 명동은 길거리음식 구경말곤 볼 게 없고, 종로나 신촌 역시 사정은 비슷하니 어쩔 수밖에.

두루마리 휴지 풀리듯 시간은 술술 흘러간다. 어느덧 12월, 크리스마스, 이것도 벌써 과거형이다. 그나마 올해 크리스마스는 우연히 알게 된 공연 소식에 나름 분위기 있고 추억거리 하나 남겼다. 홍대 주차장 골목의 작은 카페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살짝 쓴 생맥주를 들이키며 기타 연주와 노래를 즐겼고, 나는 틈틈이 <꽃보다 남자>를 읽느라 바빴던 저녁이었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일에 점점 무뎌지고 있음에도 연말은 연말이다. 시끌벅적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텅 빈 느낌은 여지없이 찾아온다. 올 한해 나는 얼마나 사랑하고, 감사하고, 행복하고, 겸손하고, 슬퍼하고, 후회하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섰을까. 손가락을 하나둘 접어가며 세어봐도 잘 모르겠다.

때로는 이 작은 공간 안에 한 글자 남기는 일조차 버겁다가도, 가슴 속 무언가 토해내듯 써내려갔다. '나는 어디서 왔고, 무엇을 꿈꾸며 흘러가고 있는가'하는 고민들이 거품처럼 흩어졌다가 높은 파고로 몰아쳐오기도 했다. 피할 수 없는 벽에 계속 몸을 부딪쳤고, 검푸른 멍과 크고작은 생채기들에 고통스러웠고, 그래서 또 하염없이 몸을 던졌다. 모든 것들은 떠났고, 다시 돌아왔다. 

하여 당신이 고마웠고, 우리가 애처로웠고, 연약한 모든 마음들이 사랑스러워 눈물나던 한 해는 안녕이다. 그리고 또 안녕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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