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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말은 자꾸 날아가는 느낌이어서

"낯설지만 편지가 나을 것 같네요. 말은 자꾸 날아가는 느낌이 들어서요.(유희열, 즐거운 편지)"

언젠가부터 편지를 떠올리면 늘 이 가사가 생각났다. 토이 노래로만 기억했는데, 찾아보니 '익숙한 그 집 앞' 앨범에 들어있던 노래다. 내일은 온 집안을 뒤져야 할듯. 어쨌든 편지, 이 두 글자는 사람을 참 설레게 한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 중지에 힘을 잔뜩 주고, 마치 혼이라도 빠져나갈듯 고개는 푹 숙인 채 글 쓰기를 좋아하는 내게는 꽤 오랫동안 사랑하는 일이며 놀이다.


문득 생각해보니, 태어나 처음으로 외웠던 시는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였다. 영화 <편지>가 한창 화제였던 시절, 사춘기적 감수성에 젖어있던 초등학교 6학년짜리가 "내 그대를 생각하면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를 외우고 다녔다니! 쑥스러움과 낭만적 자부심이 뒤섞여 묘한 웃음이 나온다.

집을 비운 지 하루 사이에 어머니는 땀을 줄줄 흘리며 가구 배치를 바꿨다.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기는커녕 "책상 그냥 놔두지, 뭐하러 바꿨냐"고  투정부터 부리는 내게 대뜸 거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박스를 가리켰다. "정리하면 네 박스가 두 개로는 줄것 같다. 얼른 좀 버릴 것 버리고 그래." 그렇게 오랜 잡동사니를 뒤척였다. 박스 속에 쌓여 있던 건 물건들만이 아니었다. 

수업시간에 친구와 주고 받은 쪽지, 의리의 징표요 의무 중 하나였던 크리스마스 카드와 엽서, 그리운 사람이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을 꾹꿈 담아 건넨 편지들. 막 한글을 떼고 조금씩 글자를 익혀가던 때 쓴 것으로 보이는 막내동생의 삐뚤빼뚤한 '언니 사랑해요'를 보니 마음이 짠했다. 이삿짐을 싸고 풀 때마다 어딘가 숨어있던 편지 뭉텅이를 발견했다. 종이조각에 가까운 것들마저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 끝내 짐꾸러미에 넣었는데, 이럴 때면 참 잘했다 싶다. 



한편으론 기억 이상으로 사랑받고, 밝고, 환했던 그 시절의 나를 보게 된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바다는 늘 생각했던 것보다 20% 이상 크다고 했다. 우울과 몽상은 늘 20% 이상 거대하게 나를 덮쳤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거 또한 기억했던 것보다 20% 이상으로 따뜻하진 않았을까? 터널 속에 갇혀 빛 한 점 보이지 않는다 느꼈던 시절에는 상상 못했던 일, 빛바랜 편지들을 뒤척이며 생각한다.

누군가는 '자란지교를 꿈꾸며', 또 다른 이는 '심장이 두근두근대는 멋진 날들이 가득하길 바란다는 니 말대로, 네게도 이뤄지길'이라며, '그리움'을 고백하며 쓴 편지들.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에 아득하고, 잃어버린 인연들에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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