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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아직 화요일

3번의 최종 탈락과 1번의 실무 낙방으로 정신없던 여름과 가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계절의 끝자락에 서있다.

요즘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한다. 여러가지 의미로. 마지막 시험결과가 나온 날에는 '지겨워서 더 못하겠다'고 외쳤는데, 하루 만에 '결국 어쩔 수 없다'로 결론내렸다. '배운 게 도둑질'이란 말처럼 꽤 많은 시간을 한 목표만 보고 달려온 것도 있지만, 역시 '하고 싶은 일'이어서 포기가 안 된다. 0.01%의 가능성만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점도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앞으로 어떻게 지낼래' 스스로 묻고 있다. 

돈은 벌고 싶다. 실업급여는 고작 2회 남았다. 엄마아빠는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무수입'으로 지내면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 받을지도 안다. 그러니 정 꺼림칙하면 겨울방학 시기에 과외나 하라고 했다. 여러 안 중 하나. 취업도 고려대상이다. 원서 쓸 만한 곳이 있는지 보고 있다. 단 마음이 내키지 않을 뿐더러 잘 모르고 경쟁력도 없기에 좀 신중히 찾고 있다. 일을 한다면 가급적 지금껏 공부한 것과 내 장점, 능력을 썩히지 않는 것을 원해서 어렵긴 하다. 궁하면 가리지 말아야 할테지만 아직 배는 덜 고픈 걸까. 사실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기사도 계속 쓰고 싶다. 현장 취재든 리뷰나 칼럼이든 간에 꾸준히. 그 자체로 재밌고 배우는 점도 많다. 일요일에는 평택초등학교 근처에 문을 연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의 심리치유공간 '와락'에 다녀왔다. 쌍용은, 늘 마음 어딘가를 쿡쿡 지르는 바늘이다. 대추리도 그렇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 썼듯, 2006년 '여명의 황새울'로 사람들이 피투성이가 되고 대추초교는 흔적 없이 사라진 '전쟁터'를 빠져나왔을 때,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표정의 사람들, 바쁘게 오가는 자동차들과 '공짜폰'을 외치는 휴대폰 상인을 보며 먹먹했다. '저 곳은 섬이구나.' 쌍용차 사태 역시 '섬'이었다.

'와락' 대표님은 "지역 여론이 더 차가운 게 사실"이라며 "쌍용차가 잘 못했고, 노조 이미지가 부정적인 탓이 있다"고 했다. "와락이 지역 주민에게도 좋은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럼에도 이해하기 어렵다. 17명이 죽었다. '평택'이란 한 도시에서. 연쇄살인도, 테러도 아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도시가 병들었다든가 하는 원인이 분명 있을테고, 같은 공간을 나누는 사람들끼리 머리를 맞대야 할 일 아닌가. 누구를 원망하거나 비난할 자격이 못 된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쩜 내가 '이상적인 공동체' 환상에 푹 젖어있기 때문일까.

가만 보니 9월 1일부터 공식 실업자가 됐지만 시험이다 면접이다 해서 온전히 내 시간을 갖지는 못했다. 딱히 좋은 상황은 아니고 마음 한 구석엔 불안감이 방울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다. 분명한 점은, '완벽하게' 백수가 된 지 고작 1주일 됐다는 사실. 어떻게 될지, 오늘의 스트레스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선 이번주는 시험이나 경제적 상황은 머리 속에서 지우려 한다. 책을 읽고 싶으면 읽고, 자고 싶으면 자고, 뭘 먹고 싶으면 먹고. 한 주일쯤은 마음 편히 보낼 수 있을 듯하다. 물론 몇 가지 변수가 있긴 하지만. 일단은, 아직 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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