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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A piece of ordinary day

어제는 할머니의 첫 제사였다. 전날 밤 들이켜댄 소주와 맥주의 잔해를 집 근처 분식집 국밥으로 저멀리 밀어보내고 전철을 탔다. 출발점인 청량리역에서 1호선 천안행을 타면 열차가 텅텅 비어있다. 굳이 경쟁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원하는 위치에 앉을 수 있다. 물론 늘 그렇든 기둥이 오른쪽으로 난 출입문 근처 자리에 앉는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멀다. 자다깨다를 반복해도 아직 도착 전일 때가 대부분. 가끔은 낮잠은 1시간 정도밖에 못 자는 체질이 싫기도 하다. 책을 읽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두시간 반쯤 지났을까. 드디어 평택이다. 엄마를 만나 큰집행 버스로 갈아탄다. 매번 보는 풍경인데 늘 낯설다. 쉬지 않고 나오는 '호두과자' 간판말고는.

일 좀 거들겠다고 맘먹고 일찍 도착했는데, 먼저 온 새언니와 둘째 큰어머니가 내 주종목인 '전 부치기'를 이미 끝내신 상태였다. 하는 수없어 먹기만 했다. 자리는 못 잡고 연근전 부치는 시늉만 하다 '러블리 본즈'를 봤다. 한창 집중하고 있는데 맞춘 떡을 찾아오신 큰아버지가 털썩 소파에 앉으셨다. 채널권은 포기다. 곧이어 도착한 큰오빠네 아이들이 오늘은 다른 '고모'가 없으니 나만 찾았다. 넷북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꼬맹이들과 놀아주는 일은 어색하다. '쥬니어 네이버'에 감사했다. 

처음 맞은 기일이어서인지 제사상은 명절보다도 꽉 차 있었다. 사촌동생과 서로 제사주를 따르겠다고 아웅다웅하던 시절은 어디로 갔는지, 언젠가부터는 제사를 하는 동안 부엌에서 큰어머니나 사촌들과 수다를 떨고 있다. 하지만 어제는 모처럼 술을 따르고, 제배도 했다. 꼬마일 때는 음복 전까지의 시간이 그토록 길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벌써?'할 정도로 제사가 금방 끝나는 느낌이다. 어른들이 정종을 나눠 마시고 그 옆켠에 앉아 적과 전, 과일 등을 집어 먹는 일이 불편했던 기억도 까마득하다. 

드문드문 빈 자리를 보며 할머니는 서운해하셨을까..? 식은 전을 데워 먹는 지금, 문득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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