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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대한민국 법원은 여러분들의 싸움을 잊지 않았다" "언론인들이 회사원에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언론인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했던 기자들의 순수한 열정을 법원이 평가해줬다." 문장 구석구석이 마음을 찌른 한 마디. 노트북으로 받아치는데 괜시리 울컥해지더라. 나는 기자가 꼭 회사원이 아니라고, 언론사는 일반기업과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분명 우리는 공공성을 지향하지만 먹고는 살아야한다. 그 끊임없는 줄타기를 하면서 괴로워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많은 언론인들이 '너는 그냥 월급쟁이냐'라는 말에 파르르한다. 우리의 삶이 그닥 화려하거나 매일매일 지쳐쓰러질 정도로 고단하진 않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약간의 헐벗음과 약간의 반짝임 모두 조금은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선택한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 아닐까. http://www.ohmynews... 더보기
세월호 그후... 얼마나 안전해졌나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는 시간을 이길 수 없다. 서러워도 그럴 수 없다. 2014년 4월 16일로부터 벌써 353일째다. 실종자들은 대부분 숨진 채로 귀환했지만, 아직 9명은 가족의 품에 돌아오지 못했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머리에 심고, 온몸으로 울었던 엄마아빠들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 언젠가 만날 아이들이 '엄마아빠, 지금은 안전한가요?'라고 물었을 때 한 마디라도 답하기 위해서, 뻔뻔하고 처참한 국가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인간답게 만들고 싶어서 싸우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지독하고, 우리는 아직 반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부정확한 기록이지만, 언론 기사를 토대로 세월호 이후 주요하게 다뤄진 안전사고 소식을 구글 퓨전테이블로 표시해봤다.곳곳에 찍힌 붉은 점들을 우리는 얼마나 지워나갈 수 있을.. 더보기
내가 만난 ‘세월호 파란바지 아저씨’ 3월 21일 페북과 트위터에 올렸던 글로 기사에 대한 소회를 갈음한다. "어제 오전 내내 쓸까말까 고민했다. 김동수씨가 자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가뜩이나 민감한 일로 그러는 게 본인에게 더 좋지 않을 듯했다. 생명엔 지장없고, 안산으로 떠난다는 그의 소식에 생각을 정리했다. 세월호는 사고였으나 사건이 되어버렸다. 무능들이 겹겹이 쌓여가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살아남은 자들도 희생자 중 하나일 뿐이다. 앞으로의 날이 그들에겐 형벌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자꾸 '살아온 죄'를 말하는 이유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죄송하다고, 혹은 당신이 무슨 잘못이냐고 할 수는 있다. 딱 거기까지다. 타인의 말은 실제하는 고통을 없애주지 못한다. 김동수씨에게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리라. 사실 나는 무기력.. 더보기
조현아는 끝까지 승무원 탓을 했다 지난 2일 서울서부지방법원 303호에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결심 공판을 방청했다. 사실 나는 이 사건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여론이나 언론보도가 좀 과잉이라고 생각해왔다. 현장 취재를 직접 안 한 이유도 있었다. 아무튼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조 전 부사장의 최후진술까지 지켜보느라 이날 저녁도 못 먹었는데(ㅠㅠ)... '진심으로 뉘우친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개인차가 있다. 이걸 받아들이는 정도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1년 넘게 재판을 지켜보면서 '진심으로 뉘우친다'는 느낌을 받은 경우는 딱 한 번이었던 것 같다. 그런 인물은 세월호 선원 재판 때 매번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수시로 얼굴이 벌개져서 눈물을 흘리던 박한결 3등 항해사다. 반면 조 전 부사장은 '그냥 고.. 더보기
우리는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은가 원제는 '우리는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은가'였는데, 편집과정에서 달라졌다. 투박하긴 하지만, 난 원제가 좋은데 ㅎㅎ 아무튼 이석기 관련 취재를 하면서 늘 '도대체 이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하다고...'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이들은 오래된 현실을 인정 못하고 과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왜 현재의 우리가 두려운 존재라고 치켜세우는지...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1490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죽었다. 다급하게 속보를 전하는 TV뉴스 앵커 목소리에 ‘전쟁이라도 나는 건가?’했지만 걱정은 잠시였다. 진짜 전쟁을 걱정한 건 그로부터 몇 년 뒤의 일이다. 나와 친구들은 노스트라다.. 더보기
[서초동 일기] 20150123 압수수색부터 대법원 판결까지 2013년 8월 28일엔 서대문구의 한 커피숍에서 급하게 '통합진보당 관계자 압수수색' 기사를 썼다. 그날 나는 환경담당으로 기후변화 관련 기획 취재를 하고 있었다. 9월 4일에는 국회 근처에 다른 취재를 갔다가 엉겹결에 이석기 전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 과정을 봤다. 다음날 구속영장실질심사부터 발부까지 취재하는 것 역시 내몫이었다. 결혼 준비를 하느라 1심은 초기만 담당하기로 했다. 하지만 몇 달 뒤 나는 수원지법 법정에 앉아서 '합정동회합'녹음파일을 듣고 있었다. 증거로 채택된 32개 전부를. 2014년 2월 17일에는 새벽 세 시에 집을 나섰다. 1심 선고공판 방청권을 받기 위해서였다. 상도동 집에서 수원지법까지 걸린 시간은 44분. 법원 당직자는 내게 "아무리 그래도 이 시간에 오시면 어떡하냐"며 .. 더보기
밤 12시 이후부터는 야간시위? 헌재의 이상한 결정 '일몰~24시는 시위 허용' 놓고 "자의적·입법권 침해" 비판 나와 헌법재판소는 27일 야간시위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0조를 '해 진 후부터 24시까지의 시위를 금지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위헌(한정위헌)이라고 선고했다. 지난 2009년 야간 옥외집회 금지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데 이어 다시 한 번 집회의 자유를 강조하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러나 '24시'라는 기준의 근거가 불분명한데다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헌재 재판관 9명은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과 공군 작전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이 낸 집시법 10조와 그 처벌조항인 23조 3호 위헌제청심판에서 6(한정위헌)대 3(전부위헌)으로 한정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한정위헌은 법 조항을 특정해서 적용하거나 .. 더보기
[서초동 일기] 20150121 나는 얼마나 다를까 두 달만에 광주에 왔다. 반팔을 입고, 샌들을 신고 처음 찾았는데 이제는 두툼한 패딩을 껴입고 도착했다. 유족들 옷차림도 비슷하게 달라졌다. 대한민국 재판이 3심제라는 건 법조인이나 당사자, 기자가 아니면 실감 못하고 살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비극과 얽혀있다면 더더욱 그들만의 일이 된다. 해경의 구조책임을 유일하게 묻는 공판이, 선원들이 책임을 두고 사실관계를 마지막으로 다투는 공판이 처음으로 열린 날인데 법원 주변은 조용했다. 선원들 첫 공판준비기일이 있던 날과 1심 선고일에 비교해보면 적막할 정도였다. 하지만 유족들은, 옷차림만 달라졌을 뿐이었다. 슬픔도, 분노도 여전했다. 280일째 그들은 2014년 4월 16일을 살아간다. 2800일째에도, 2만 8000일째에도 다르지 않겠지. 그들만 살아가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