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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서초동 일기] 20150807 때론 기자도 지겹다 어제(6일) 민일영 대법관 후임 임명제청이 있었다. 4일 대법관 후보자 추천위가 꼽은 세 명이 모두 '서울대·50대·남성·법관'이라는 공식에 딱 들어맞는 인물들이라 사실 별 기대 없었다(관련 기사 : '서울대·50대·남성' 또다시 맞아떨어진 대법관 공식) 이기택 후보자로 정해졌다는 소식에도 '그럼 그렇지' 했다. 당연히 비판해야 할 사안이라도 늘 같은 관점으로 같은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면 기자들도 지겹다. 이미 몇 달 전 신영철 대법관 후임을 정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던 비판들은 여전히 유효했다. 후보자 추천위가 열리기 전, 박상옥 후보자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관련 의혹으로 청문회 일정이 잡히지 않아 양승태 원장이 국회에 친서까지 보냈을 때 기사를 썼다. 모두 1)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2) 후보.. 더보기
[서초동 일기] 20150716 끝을 보고 싶었다 그만 좀 보고 싶었다. 아니, 끝을 보고 싶었다. 입사 후 기억에 남을 취재를 뽑으라면 세 가지를 말할 수 있다. 내란사건과 세월호 선원공판, 그리고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어쩌다보니 시작부터 쭉 따라가며 취재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특히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은 '추위'와 '배고픔'이라는 시련을, '타이핑능력 향상'이라는 선물을 안겨줬기에 남달랐다. '어떻게 저런 일이...'하는 생각에, 잘 기록해야겠다는 의무감 아닌 의무감도 조금은 있었고. 임신을 하고 일과 관련해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볼 때 이 사건 선고도 자연스레 포함시켜봤다. 다행이었다. 원세훈 전 원장의 구속시한 만료는 10월 8일이고, 주심인 민일영 대법관 임기는 9월이면 끝나니 충분히 직접 볼 수 있겠더라. 16일 아침엔 절로 "이제 세월.. 더보기
만들어진 길과 만들어가는 길 “길이라는 것이 어찌 처음부터 있단 말이오... 한 사람이 다니고 두 사람이 다니고 많은 사람이 다니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법...” 수험생 신분을 망각하고, 월화 밤 10시면 저절로 텔레비전 앞에 앉게 만들었던 드라마 의 명대사 중 하나다. 등장인물들의 애절한 사연도 사연이었지만, 대사 하나 하나가 잊기 힘든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 문구를 아주 오랜만에 떠올렸다. 덕분에. 지난 6월 1064호의 표지는 ‘좋은 기자 프로젝트’였다. ‘저널리즘 없는 저널리스트’들을 쏟아내는 한국의 기자 육성 시스템을 비판하고 해법을 찾아보려는 기획이었다. 이 기획이 지적한 ‘기자 탄생 경로’며 문제의 원인은 아랑카페, 언시 대비 학원과 스터디, 인턴십, 그리고 도제식 수습교육이었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져있.. 더보기
[서초동 일기] 20150625 조금은 서글픈 여름밤 8차선 대로를 건널 수 있는 시간은 약 17초, 마음이 다급해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는 2시, 현재 시각은 1시 50분. 결국 배를 움켜잡고 뛰었다. 오늘로 11주 1일차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봤자 경보하는 것보다 조금 빠른 속도였지만 무사히 길 반대편에 도착했다. 지난 화요일, 무수히 쏟아지는 문자 속에 ‘전원합의체 선고사건이 추가됐음을 알려드립니다’란 내용을 휘리릭 넘겼다. 어쨌든 D-Day가 찾아왔으니 일정을 다시 확인해봤다. 아차 싶었다. 이주노조 설립신고서 반려처분 취소소송을 하마터면 빼먹을 뻔한 것 아닌가; 꾸준히 관심 갖고 챙겨본 사건은 아니었다. 몇 년 전, 성소수자인 ‘미셸’이라는 이주노동자를 통역한다는 JB오빠 얘기에 ‘아 그렇구나’했던 기억이 컸을 뿐이었다. 당시 이주노조 4.. 더보기
"'센 놈' 삼성과의 싸움... 내 모든 잠재력이 폭발했다"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3-②] 내부 고발자에서 변호사가 된 이은의씨 "나 진짜 간다, 잘 있어!" 2010년 10월 31일, 은의씨는 삼성을 떠났다. 오래 살던 집을 나오는 기분이었다. 사원증을 반납하고 회사 현관을 나서는 순간, 주변의 모든 것들이 눈에 박혔다. 늘 밥 먹던 구내식당, 좋아했던 나무들… 버스를 타려고 뛰다가 넘어진 자신을 잡아준 사람에게 너무 창피해서 고맙다는 말도 못한 채 사무실까지 줄행랑쳤던 기억 등 지난 12년 9개월의 삶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끝이 보이지 않던 싸움에 이미 종지부를 찍은 뒤였다. 은의씨는 회사를 상대로 한 법정 다툼에서 모두 이겼다. 삼성전기는 성희롱 피해가 없었기 때문에 인권위의 차별시정권고는 부당하다며 취소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회사의 주장.. 더보기
회사의 치졸한 보복 "꽃무늬 청바지 입은 적 있죠?"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3-①]상사 성희롱에 왕따... 그럼에도 싸우다 12년 9개월 동안 '삼성을 살았다'. 마지막 5년은 '왕따'로 살았다. 상사의 성희롱을 두고 입을 열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은의(42)씨는 숨지 않았다. 견뎠다. 삼성을 살며 싸웠다. 2010년 10월 31일, 그는 마침내 모든 싸움에서 이긴 다음 삼성을 나올 수 있었다. 는 그가 오롯이 지켜낸 삶을 인터뷰와 저서, 판결문 등을 바탕으로 기록해봤다. 이은의씨의 이야기는 2005년 6월 17일부터 시작한다. 마침내 찾아온 디데이 '안 들으면… 나와서 그 다음에 생각하자.' 걱정보다는 '에이 모르겠다'란 심정으로 은의씨는 영업인사부장 앞에 섰다. 인사부장은 그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냐, 출장은 잘 다녀왔느냐, 어떻게 할지 생각해봤.. 더보기
24년만의 무죄...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만든 검찰, 법원, 언론, 국과수는 침묵 2014년 2월 13일, '유서대필' 사건 재심 선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강씨는 자신의 재판이 법원과 검찰에게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선고 직후 든 생각이) '재판부가 유감 표시를 안 하네?'였다. 이 재판은 제 재판이 아니다. 사법부가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이고 검찰은 자기 잘못을 반성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데에 더 의미가 있다. 판결 내용과 상관없이 말이다. 사법부의 권위는 저를 세워놓고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 이렇게 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겸허하게 인정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때 세워진다. 또 "지금 현재 검사직에는 없지만, 사건에 관여한 검사들은 아마 제 사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더보기
[안국동 일기] 20150501 잔인한 오월의 밤 # 표적을 찾는 물대포의 눈에는 반짝 붉은 불빛이 서린다. 그 두 눈을 마지막으로 본 게 2013년 11월 11일이니 제법 오랜만이었다. 그래도 2년 전엔 경고 살수에 그쳤고, 요령껏 잘 피했다. 2008년 촛불집회에 나갔을 때는 두 번 모두 충돌 없이 끝났다. 그러니까 나는 어제 내 인생 첫 물대포를 맞았다. 빗맞거나 물포 끝부분을 맞았는데도 아팠다. 사실 아픔보다 순간의 공포가 컸다. 캡사이신도 이렇게 가까이서 냄새를 맡긴 처음이었다. 기침을 멈출 수가 없더라. 직접 얼굴에 맞은 사람들은 정작 정신을 못차려서 주변에서 계속 물을 찾았다. 2015년 5월인데, 분명 21세기인데... 해저도시는커녕 거리의 풍경조차 시대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나 현실이다. # 사람이 막무가내인 경우는 고집이 세거나 분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