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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밑줄을 긋다

그러므로 우리는 :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 - 판단을 유보하면 희망은 영원하다. - 나는 밖으로 나가 부드러운 석양을 받으며 공원이 있는 동쪽으로 산책이나 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거칠고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내 목덜미를 잡아채는 바람에 밧줄로 묶이기라도 한 듯 꼼짝 없이 의자에 붙들려 앉아 있었다. 지금도 도시의 하늘을 장식하는 이 방의 노란 창문들은 땅거미가 내려앉는 거리를 지나다 무심코 위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비밀을 나누어주고 있으리라.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올려다보고 궁금해하는 자였다. 나는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밖에 있었다. 놀랍도록 다양한 인간사에 매혹당하는 한편으로 진절머리를 내면서. - 그가 사려 깊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사려 깊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긴 미소였다. 그것은 변치 않을 확신이 담긴, 일생에 네다.. 더보기
한강, <소년이 온다> 중에서 1장 어린 새 17쪽)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를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24쪽) 볕이 나른하던 5교시에 식물의 호흡에 대해 배웠던 게 다른 세상의 일 같다. 나무들은 하루에 딱 한차례 숨 쉰다고 했다. 해가 뜨면 길게 길게 햇빛을 들이마셨다가, 해가 지면 길게 길게 이산화탄소를 내쉰다고 했다. 그토록 참을성 있게 긴 숨을 들이쉬는 나무들의 입과 코로, 저렇게 세찬 비가 퍼붓고 있다. 그 다른 세상이 계속 됐다면 지난주에 너.. 더보기
바라는 것(Desiderata) 언젠가 기억해두려고 적어놨던 글. 무탈하면서도 피로감만 쌓여가는 일상을 돌아보며 다시 적는다. 조만간 다시 카메라도 잡아야겠다. ===================== 소란스러움과 서두름 속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하기를. 정적에 싸인 곳을 기억하기를. 쉽게 굴복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당신의 진실을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말하기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심지어 아둔하고 무지한 사람들에게도 귀를 기울이기를. 그들도 그들 나름의 이야기가 있으니. 사납고 나쁜 사람들을 피하기를. 그들은 영혼을 갉아먹으니.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면 공허해지거나 잠시 기분이 나아질 뿐. 세상에는 항상 당신보다 낫거나 못한 사람들이 있거늘. 앞일을 계획하는 것만큼 지금까지 이뤄낸 것들을 음미하길. .. 더보기
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가 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가? 누군가의 현란한 언어에 감탄하기 위해서? 난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읽는 것은 우리가 '다른 형태의 사실'에 목말라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진실,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공동체에 대한 특별한 진실, 그리고 가장 특별하며 유일한 진실인 우리 자신의 이야기. 소설은 현실에 존재했던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에 언제라도 우리 스스로의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은 천재 아이들의 이야기이며 군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국인이 저술한 가장 탁월한 전략 교본인 더보기
나, 한때 부자였다 나, 한때 부자였다. 꿈의 부자. 게으른 몽상가. 그 푸른 스무 살 시절,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이 되고 싶었던가. 내가 지나온 지난 이십 년은 그 많던 꿈들을 버려 온 시간이었다. 클랙션 대신 트럼펫을 부는, 대륙을 횡단하는 트레일러 운전사, 자전거를 타고 노을진 논길을 달려오는 시골학교 선생, 산림 감시원, 태평양을 횡단하는 요트 운송 요원, 실크로드 도보여행, 칠레 종단 열차여행, 마다카스카르 총독…. 나는 꿈을 꾸었으나, 꿈은 나를 꿈꾸어주지 않았다. 시와 영화 보기, 그리고 '단순한 삶, 깊은 생각.' 이것이 마지막 남은 나의 꿈이다. - 이문재, , '극장에 관한 짧은 이력서' 중에서 더보기
<도둑 맞은 인생> 중에서 p134 끝없이 시간은 느릿느릿 흘렀다. 우리의 주된 적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시간을 보고 느꼈다. 시간은 손으로 만져졌고 괴물 같은 형상으로 우리를 위협했다. 낮시간 동안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부드러운 미풍만으로도 시간은 우리를 조롱하면서 우리가 죄수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p152 한 뚱뚱한 암컷 들쥐 뒤에는 항상 새끼 두 마리가 따라다녔다. 들쥐들 몸에 벼룩이 득실거린다는 말을 들었던 나는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나는 두 여동생의 도움을 받아서 새끼 쥐 한 마리를 벽에 밀친 다음 짧은 막대기로 꼭 붙들고 있어보았다. 순식간에 수백만마리의 빨간 벼룩이 온 감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마룻바닥이 순식간에 벼룩으로 뒤덮였고 그 광경을 본 나는 거의 토할 뻔했다. 하지만 우리는 점차 들쥐의 .. 더보기
어느 비정규직의 웃픈 이야기 '툭하면'이라고 했지만 진호가 팀에서 이탈한 건 이번이 두번째였다. 이태 전, 계룡산의 선화무당을 연구하던 T교수는 모든 데이터를 얻었다고 자신하면서 시퍼렇게 날이 선 작두 위를 뛰어보라고 내게 요구했다. 그때 진호가 불같이 화를 내며 팀을 떠났다. 나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정말로 시간강사라는 비정규직에서 벗어나 정식 교수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T교수가 원할 땐 수청이라도 들어야 했다. 결국 팔뚝을 내밀어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을 차례로 주사한 후 그 역겨운 황활경 속에서 작두 위를 방방 뛰었다. 그리고 내 발바닥의 인대가 싹둑, 끊어졌다. "응? 맥 빠진 새끼, 저런 정신으로, 응? 뭘 하겠다고? 응? 병신 같은 새끼"T교수는 분을 참지 못해 한참이나 욕을 해댔다. 이태 전 진호가 팀.. 더보기
긍정성의 과잉, 피로사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