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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밑줄을 긋다

어느 비정규직의 웃픈 이야기

'툭하면'이라고 했지만 진호가 팀에서 이탈한 건 이번이 두번째였다. 이태 전, 계룡산의 선화무당을 연구하던 T교수는 모든 데이터를 얻었다고 자신하면서 시퍼렇게 날이 선 작두 위를 뛰어보라고 내게 요구했다. 그때 진호가 불같이 화를 내며 팀을 떠났다. 나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정말로 시간강사라는 비정규직에서 벗어나 정식 교수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T교수가 원할 땐 수청이라도 들어야 했다. 결국 팔뚝을 내밀어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을 차례로 주사한 후 그 역겨운 황활경 속에서 작두 위를 방방 뛰었다. 그리고 내 발바닥의 인대가 싹둑, 끊어졌다.

"응? 맥 빠진 새끼, 저런 정신으로, 응? 뭘 하겠다고? 응? 병신 같은 새끼"

T교수는 분을 참지 못해 한참이나 욕을 해댔다. 이태 전 진호가 팀을 이탈했을 당시에도 그는 똑같이 욕을 했었다. 내가 출혈 과다로 기절했다가 병원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곁에는 눈이 퉁퉁 부은 진호가 앉아 있었다. 링거액에 포함된 마취제에도 불구하고 봉합된 발바닥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진호가 '왜 했어요, 왜요' 하고 원망하듯 말했다. 나는 말 못 할 서러움에 꺼이꺼이 울기만 했다. 그로부터 이 년이 흐른 지금 진호가 다시 왜냐고 물어온다면, 난 서럽게 우는 대신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세상은 보통 사람과 쩔뚝발이로 나뉘지 않는다고. 세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다고.

- 박형서, '열한시 방향으로 곧게 뻗은 구 미터가량의 파란 점선'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