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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밑줄을 긋다

<도둑 맞은 인생> 중에서

p134 끝없이 시간은 느릿느릿 흘렀다. 우리의 주된 적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시간을 보고 느꼈다. 시간은 손으로 만져졌고 괴물 같은 형상으로 우리를 위협했다. 낮시간 동안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부드러운 미풍만으로도 시간은 우리를 조롱하면서 우리가 죄수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p152 한 뚱뚱한 암컷 들쥐 뒤에는 항상 새끼 두 마리가 따라다녔다. 들쥐들 몸에 벼룩이 득실거린다는 말을 들었던 나는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나는 두 여동생의 도움을 받아서 새끼 쥐 한 마리를 벽에 밀친 다음 짧은 막대기로 꼭 붙들고 있어보았다. 순식간에 수백만마리의 빨간 벼룩이 온 감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마룻바닥이 순식간에 벼룩으로 뒤덮였고 그 광경을 본 나는 거의 토할 뻔했다. 하지만 우리는 점차 들쥐의 존재에 무감각해졌다. 나중에는 그냥 일상적인 농담이 될 정도였다. 우리가 미미에게 시간을 물으면 그녀는 "응, 들쥐들이 올 시간이야"라고 대답하곤 했다.


p174 뒤에 '긴 칼들의 밤'이라고 이름붙인 그날 밤은 우리의 전 생애에서 가장 끔찍한 밤이었다. 그것은 종말의 날이었다.

형제자매를 죽이거나 자살, 부탄 가스통으로 감옥을 폭파하는 일 등 모든 것이 가능했다. 누구라도 이런 일에 앞장서서 뛰어들고 싶어했다. 제비뽑기에서 수카이나가 이겼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서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맞은편에 앉아서 나는 정어리 통조림 깡통에서 잘라낸 금속 조각과 바느질 바늘로 그녀의 손목을 긋기 시작했다. 나는 흐느끼면서 그녀의 혈관이 있는 부분의 살을 가능한 깊숙하게 그었다. 수카이나는 잠깐 움찔했지만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p283 나는 신경 써서 세상으로 다시 들어갈 때 입을 옷을 골랐다. 청바지에 남방셔츠, 넥타이와 네이비 블루 실크 상의였다. 나는 자유를 기쁘게  해주고, 매료시키고, 유혹하고 싶었다. 처음으로 우리는 경찰과 비밀첩보원들이 오기를 기다렸자. 자동차와 밴으로 이루어진 호송대 행렬이 집 바깥에 멈춰 섰다. 사람이 오고가고 시끄러운 소동이 일어났다. 우리는 1시간 동안에 20년 동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난 기분이었다. 정원 문이 열리면서 내 마음도 함께 열렸다. 그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우리가 차에 올라타자 호송대는 출발했다. 그 순간의 소음, 냄새, 색깔, 흥분 등 모든 것이 내 마음속에서 뒤범벅이되었다. 마침내 나는 슬픔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밖을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손을 잡고 가는 연인들, 딸과 함께 가는 어머니, 뛰어다니는 강아지, 가지 위에 내려앉은 새 한 마리처럼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온갖 사소한 삶의 모습에 매혹당했다. 이 모든 것이 곧 내 것이 된다니.


p287 걷고, 자고, 먹고,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 이 모든 것을 새롭게 배워야만 했다. 그 여러 해 동안 시간은 그냥 흘러갔을 뿐이었다. 내게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었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내게는 아침도, 오후도, 아무런 경계도 없었다. 한 시간이 며칠이기도 했고 몇 분간이기도 했다. 나는 다른 이들의 시간이나 서두름, 느림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 말리카 우프키르, 미셸 피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