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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밑줄을 긋다

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가

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가? 누군가의 현란한 언어에 감탄하기 위해서? 난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읽는 것은 우리가 '다른 형태의 사실'에 목말라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진실,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공동체에 대한 특별한 진실, 그리고 가장 특별하며 유일한 진실인 우리 자신의 이야기. 소설은 현실에 존재했던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에 언제라도 우리 스스로의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엔더의 게임>은 천재 아이들의 이야기이며 군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국인이 저술한 가장 탁월한 전략 교본인 <해병전투 Marine Corp's Warfighting>의 저자이자 걸프전 당시 핵심 전략가였던 존 F. 슈미트는 자신이 가르치던 쿠안티고 해양대학에서 리더십교재로 이 책을 사용했다. 애팔래치아주립대학과 연계된 와토가칼리지에서는 군대와는 전혀 무관한 목적으로 이 책을 활용했다. '개인의 문제 해결과 자기 창조'라는 주제 토의에 이 책을 활용한 것이다. 그밖에 토론토의 한 대학원생은 <엔더의 게임> 안의 정치적 이념을 연구했으며 페퍼다인의 작가와 비평가들은 이 책을 종교소설로 규정했다.


이들은 모두 이 책을 제대로 사용했다. 이들은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로서 이야기 안에 뛰어들었으며, 저자의 눈이 아닌 자신들의 눈으로 엔더의 세상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작가와 독자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상호교류의 정수다. '진실된' 이야기는 작가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손에 있는, 글자가 쓰인 종이의 묶음 속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야기는 다름 아닌 작가의 희망일뿐이며, 문장은 그 희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작가가 창조해낸 도구일뿐이다. 작가의 문장에 의해 인도되고, 형태가 갖추어진 뒤에 독자들 자신의 경험과 소망, 희망과 공포에 의해 변형되고, 설명되고, 확장되고, 수정되고, 명확해진 것. 그것이 진정한 이야기다.


<엔더의 게임>에 담긴 이야기는 이 책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과 내가 당신의 기억 속에 함께 만들어낼 그 무엇이다. 이 이야기가 당신에게 의미 있는 것이 된다면 그것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님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당신과 내가 함께 만들어낸 것이다.


- 올슨 스콧 카드, <엔더의 게임> 머리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