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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결혼을 한다는 것은


그러고 보니 벌써넉달을 꽉 채웠다. 청첩장을 돌릴 때만해도 우리는 '일곱 번의 겨울을 함께 보냈고, 이제 여덟 번째 봄을 기다린다'고 했는데 , 그 봄마저 성큼 다가왔다. 겨우내 바싹 말라있던 집 앞 목련나무에서, 빌라 화단에 솟아난 대파들에서, 발이 좀 시렵긴하지만 굳이 보일러를 때지 않아도 될 정도의 안방 공기에서 봄이 느껴진다. 이틀 전에는 그와 동네 약수터에 다녀오기도 했다.


연애의 시작은 사소했고 뜨거웠으며 관계는 따뜻했다.언젠가부터 나는 그의 킥킥거리는 웃음과 마냥 엉뚱해보이기만 하는 혼잣말에 익숙해졌다. 늘 달콤하고 꿈결같진 않았다. 우리의 온도는 대개 미지근하면서도 온기를 유지했다. 이따금 차갑게 식는 날도, 원망과 분노로 끓는 점을 넘겨버리는 날도 있었지만 아예 얼어붙어버리거나 수증기로 날아가버리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고, 부부가 됐다.


여전히 그를 부르는 호칭은 '오빠'다. 남편이나 여보, 서방 등을 입에 올리는 순간은 장난이나 애교에 가깝다. '자기'란 말은 아예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혼 전과 후의 미묘한 차이는 있다. 누군가는 '아직 신혼이라 그래~'라고 할지 모르겠다만, 관계의 밀도는 짙어지고, 온기는 더 가득해진 느낌이랄까? 새집으로 이사오기 전까지, 나는 집을 드나들 때마다 불안했다. 의도찮게 동거를 시작한 후 늘 마음 한 구석에는 '들키면 어떡하지?'란 두려운 질문이 자리잡고 있었다. 잘못한 일이 아닌데, 죄지은 것도 아닌데 어딘가 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다행히도(?) 우리는 잘 넘어갔다. 공식적으로는(비공식적으로는 모르겠다, 한 번도 부모님께 얘기하진 않아서;). 


그래서였을까? '결혼'이란 두 글자가 주는 안정감, 충만함은 '관계'의 무게에서 온 것도 있지만 '집'이라는 공간이 변한 요인도 컸다. 두 사람만의 온전한 장소가 생기는 일은 생각보다 힘이 셌다. 돌이켜보면 자취생 시절, 가장 마음이 편안했던 순간은 신사동 옥탑방 누런 장판에 껌딱지마냥 붙어서 뒹구르르할 때였다.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 후 이따금 서글퍼지던 순간은 '서울 하늘 아래 나만의 공간은 없다'는 자각을 할 때였고. 사람이 오롯이 제 두 발로 섰다고 느끼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한둘 아니겠지만, 공간은 정말이지 필수다. 방이든, 집이든, 온전히 내것이라 자각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 부부라는 가족 형태를 택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Home'이란 단어에 딱 들어맞는 주거공간. 문제는 돈이다. 결국 관계-주거-심리적 안정감 이 세 가지는 주머니 사정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운이 좋았다. 주머니가 가벼웠지만, 비빌 언덕이 있었다. 입만 벌리고 있는 새끼제비들에게 먹잇감을 물어다주는 부모제비마냥, 넉넉하진 않아도 손 벌린 자식들을 잡아주신 부모님들 덕택이었다. 감사함의 크기만큼 어깨가 무거워졌다. 당연한 희생이 아니란 걸 알기에, 그만큼 더 감사해하며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기에. 한국 사회에서 '이성애 결혼'의 한 축이 돈이라면, 다른 한 축은 관계였다. 나와 그가 가까워지고 서로에게 기대는 만큼 우리는 상대방의 가족들과 다가갔고, 그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물론 가장 첫 손에 꼽는 것은 그와 나의 관계다. 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까워진만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쉬는 토요일이면 홀로 거실에서 차 한 잔에 떡을 우물우물 먹으며 책을 읽거나 일을 하는 일은 내가 원하는 '여백'이다. 그가 의도하진 않았지만(ㅎㅎ). 사실 그러니까 그쪽의 여백도 배려를 해줘야하는데, 아직 쉽지 않아. 나름 해방구가 필요할테고, 그게 아제로스라는 걸 잘 알지만... 역시 어렵다. 사람은 결국 이기적인 존재인가...

'결혼은 OOO'이란 말을 꺼내기엔 사실 이른 단계다. 다만 '결혼을 한다는 건, 사람과 사람을 배워간다'고 짧게 이야기할 수는 있지 않을까. 집을 구하는 일이든, 서로의 가족을 배려하고 여백을 존중하는 일이든 간에. 결혼을 한 뒤부터 '일시정지'하거나 '뒤로감기'하는 일이 잦아졌다. 예전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일들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는 뜻이다. 

겨우 걸음마를 뗀 사람이지만, 지금 얻은 깨달음, 감사하는 마음, 마음에 닿는 따스함들 두고두고 잊지 말아야겠다. 결혼으로 나는 새로운 배움의 길에 들어섰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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