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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기성용을 위한 변명은 아니고

면도하는 기성용. 이 사람도 참 되는 일 없다... ⓒ 이정민


기성용이 사과했다.지난 28일 튀니지전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왼손으로 잘못했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위법행위’라는 질타가 이어졌다. 여러 매체에서 그의 “황당한 행동”을 지적하며 ‘대한민국 국기법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오른손을 펴서 왼편 가슴에 대고 하도록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황당했다. 법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 방식을 정해뒀다니, 그것도 ‘오른손’으로라고.


찾아봤다. 그런 이 있다. 2007년 1월 제정돼 그해 7월 공포됐다. 이 법 6조는 국기에 대한 경례 방법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때에는 선 채로 국기를 향하여 오른손을 펴서 왼편가슴에 대고 국기를 주목하거나 거수경례를 한다. 그밖에 국기에 대한 경례방법 및 절차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이때 국기 관련 규정이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그전까지는 대통령령이었다. 2001년 한나라당 이상배 의원은 “미국, 일본, 중국 등 상당수 나라들은 국기에 대하여 헌법 또는 법률로 정해 존엄성과 위상을 높이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대통령령”이라며 법률로 격상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최초로 발의했다. 동료 의원 42명이 여기에 동참했지만 이 법안은 16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 의원은 2004년 17대 국회 때 재도전했다. 열린우리당 홍미영 의원도 같은 내용의 법안을 따로 발의했다. 국회는 소관상임위원회인 ‘행정자치위원회’ 위원장안으로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뒤 몇차례 개정은 있었지만 6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국기법 자체는 그렇다 쳐도, 굳이 국기에 대한 경례 방식을 ‘법’으로 지정해야 할까? ‘선 채로 국기를 향하여 오른손을 펴서 왼편가슴에 대고’라는 상세한 설명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꼭 ‘오른손’이어야 하는지, 굳이 이걸 법으로 정해서 지키도록 해야할 필요가 있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애당초 ‘국기에 대한 경례’를 법으로 못 박아 놓은 일 자체가 의문이다. 2006년 <한겨레21>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없애자”는 도발적인 화두를 던졌다. 1968년 충청남도 학교에서 시행하던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유신 시절 정치적 이유로 왜곡된 만큼, 국가주의적 통제 시책의 하나로 많은 피해자를 낳았던 만큼 이제는 버릴 때도 됐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교사들은 회초리를 들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거나 맹세문을 외지 않는 학생들을 적발했고, 경찰에 ‘반국가사범’으로 몰린 학생들은 학교를 떠나야했다. 


지난 3월 안중근 의사 추모식에서 태극기 흔드는 아이들. 뭐 어릴 때야 국기에 대한 맹세든 뭐든 다 시키면 하지 말이죠... ⓒ 유성호


4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풍경은 여전하다. 물론 그 사이 내용도 바뀌었다. 나는 누군가 ‘국기에 대한 맹세 해봐’라고 하면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고 할 세대다. 그런데 2006년 <한겨레21> 보도로 ‘국기에 대한 맹세’를 둘러싼 논쟁 불이 붙자 1년 뒤 일부 문구가 달라졌다. “가치관의 변화, 시대의 변화”가 이유였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를 정도로, 일상생활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가 차지하는 의미는 크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 기성용의 일을 두고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을 보면... 그가 미운 털이 여러 번 박혔던 탓도 있겠지만, ‘애국’이라는 프레임은 여전히 힘이 세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고나 할까. 그런데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데, 왜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꿈꾸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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