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시콜콜한 이야기

2014년 6월 둘째주의 끄적끄적

0610


"러시아 국민들은 아픈 곳을 찔려야만, 자기 호주머니가 털려야만 잠에서 깨어나는 듯하다. 혁명의 열정은 돈과 연결될 때에만 고조된다" 안나 폴리콥스카야 『러시안 다이어리』


체첸 전쟁 참사와 난민 문제의 심각성을 다루며 푸틴 정부와 각을 세웠던 탐사보도 기자 안나 폴릿콥스카야. 


9일 러시아 법원이 2006년 10월 7일 아파트 엘레베이터에서 안나 폴릿콥스카야를 살해한 5명의 피의자에게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이 중 2명에겐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인의 피살은 드문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기자 살해 용의자에게 무거운 형이 내려진건 이례적 일입니다. 러시아 법원의 이번 판결은 주요 외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안나 폴릿콥스카야는 피살전에도 독극물 테러와 인질극 등을 포함해 수 차례의 살해 위협에 시달렸습니다. 


폴릿콥스카야가 쓴 책 『러시안 다이어리』 에서 기자 동료는 목숨을 걸고 체첸 문제를 보도하는 그녀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왜 그만두지 않는가?"


폴릿콥스카야가 말했습니다. "Nado(그래야만 하니까)"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686055898098360&set=a.558427050861246.1073741825.434398586597427&type=1&theater



열 사람의 한 걸음

http://www.kdemo.or.kr/2014/610/100c.html


0611



남편의 자취방은 반지하였다. 비가 오면 하수구 냄새가 올라왔고, 변기 물내림마저 시원찮았다. 옛 동네라 물빠짐이 나쁘지 않았고 저지대가 아니란 게 다행이었다. 


9시즈음부터 빗발이 그치질 않는다. 천둥, 번개로 시도 때도 없이 하늘이 흔들린다. 지금 장위동 그 방에선 누군가 마음을 졸이고 있겠지...


0612


ⓒ윤성효


ⓒ윤성효


국가 질서는 국민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국민은 자신들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를 구성한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냐고 묻는다면, 나라의 주인인 대한 국민이 국가를 구성하여 국가 구성원이 함께 추구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살피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냐?"라고 누가 묻는다면,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균등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나라"라고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 중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송전탑과 원전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의 삶을 지켜주는 국가라고요.

https://www.facebook.com/hmcv2001/photos/a.256748231092285.42588.256674967766278/496402387126867/?type=1&theater


0613


"중국의 사례는 또 다른 질문을 낳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고위직에는 테크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트위터 등을 차단하며 인터넷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할 방법을 찾았죠. 기술이 중국에 민주주의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중국 정부가 기술을 이용해 민주주의를 비껴갈 핑계를 찾은 셈 입니다. (관련 뉴스페퍼민트 기사 보기) 그러나 중국정부가 이 권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이젠 테크를 활용할 능력을 가진 중국의 ‘시민’들이 나타났거든요. 중국상황의 변화는 21세기 정치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화두입니다.


서방에서는 2008년 이후 정치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장 큰 세력이 금융권이 아니라 테크업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뛰어들기 보다는 로비, 후원, 캠페인 등 간접적인 방안을 활용하죠. 아마존의 제프 베소스는 워싱턴포스트를 매입하는 등 언론으로 접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테크 거물들은 정치권에 직접 뛰어들지는 않습니다. 정치인이 될 만한 이유가 점점 줄어들고 있거든요. 능력이 된다면 사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더 많은 보상을 받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선거에서 승리해 영향력을 얻기 위해 분투할 뿐이거든요. 이제 영국의 정치인은 정치인 집안에서 자라거나 학창시절부터 정치인으로 뽑혀 쭉 정치를 공부해온 이들입니다. 같은 학교를 졸업한 ‘그들만의 리그’죠. 세상의 편견을 물리치고 직업 정치인이 되는 길이 어려워질수록 일반 시민과 정치인의 거리는 멀어집니다.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던 간에 정치에 계속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테크의 힘에 도취도어 정치를 잊는 경향이 있는데, 정치가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록 우리는 이 중요한 도구에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잃게 됩니다. 경계하고 각성하는 것은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내는 비용입니다. 정치는 우리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Guardian)"


http://newspeppermint.com/2014/05/29/politics-tech/


결은 좀 다르지만, '활동가'란 단어를 '기자'로 바꿔도 공감할 수 있는 대목들이 많다.

http://www.newsmin.co.kr/detail.php?number=3003&thread=14r01


0614


http://m.chosun.com/svc/particle.html?contid=2014061303970&sname=premium


이렇게 말하는 보수, 더 많이 보고싶다.


==============


"한국의 상층부가 과거보다 더 부패했는가. 그렇지는 않다. 국회의원들이 감옥에 가는 걸 보면 호주머니에 넣은 금액이 과거와는 다르다. 수십억원 하던 뇌물 액수가 최근에는 몇 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몇 천만원 때문에 의원직을 잃은 사람도 적지 않다.


법관이나 관료들도 주변의 감시 눈초리를 의식하는 센서를 가동하며 몸조심하느라 애를 쓴다. 판사는 이해관계로 얽힐 수 있는 친구들과는 골프도 피하려 한다. 저녁 술자리에 함께 어울렸다가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을까 미리 참석자 명단을 확인하는 관료도 적지 않다. 과거엔 좀체 볼 수 없던 광경이다.


그런데도 왜 법관·검사들의 전관예우가 시빗거리가 되고, 고위 공무원들이 낙하산 인사로 한자리를 차지할 때마다 시끄러운 소음이 발생할까. 왜 백성을 미개하다거나 게으르다고 꼬집은 상류층 인사들의 발언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가. 그 이유는 그냥 시대가 달라졌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선진국이 돼가는 과정이어서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해석도 언뜻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는 지난 20년 사이 새로운 계층이 등장했다. 취업을 포기하거나 취업에 실패한 청년층이 100만명을 넘을 만큼 두꺼워졌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공식적으로도 591만명에 달한다. 엄마 혼자, 아빠 혼자 자식을 키우는 한 부모 가구는 86만명을 헤아린다. 전에는 판자촌, 쪽방촌의 빈곤층이 고민거리였다면 새로운 빈곤층은 우리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있다. 이런 빈곤층 숫자가 늘면서 거대한 하부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 숫자는 1000만명을 쉽게 넘고, 넉넉하게 잡으면 5000만명 가운데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은 월 146만원 안팎이다. 국가가 정한 최저생계비 163만원보다 낮다. 최저 생계점 이하에서 사는 591만명이 다달이 3억원씩 수입을 올리는 전직 법관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겠는가. 셋집을 구하지 못해 몇 달씩 중개업소를 쫓아다닌 외벌이 엄마가 아들딸을 명문 고교에 넣겠다고 위장 전입한 장관 후보자의 행동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는가. 10만명이 넘는 개인 파산자들이, 자녀에게 2억원의 예금을 상속하고서 국회 청문회에 나가는 날 아침에야 마지못해 세금을 내는 고관들을 보며 '뒤늦게라도 세금을 잘 냈다'고 박수를 치겠는가.


이들은 우리 사회의 질서 형성·유지 세력에 저항할 힘도, 정면으로 싸울 힘도 없다. 생각은 자학적(自虐的)일 수밖에 없고, 즉흥적인 반사(反射) 행동에 익숙해져 있다. 이들은 자신의 울분을 풀어줄 정치를 갈망하고 분노를 키우는 정치를 지지한다. 때론 자신들과 같은 언어 코드를 쓰는 정치인이 나타나 '새 정치' 깃발을 흔들면 무한(無限) 신뢰를 보내며 열광하는 것을 우리는 목격했다.


...(중략)...


이번 정권이 꽉 막혔다는 말을 듣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관피아' 척결, 전관예우 철폐를 약속하고서도 주요 자리에는 '관피아' 슬하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살았거나 전관예우의 혜택 아래서 편안했던 쪽에서 대부분 차출하고 있다. 울분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것도 아니고 같은 언어를 쓰지도 않는다. 민심의 분노 표출에 때맞춰 댓글을 달아주는 민첩함도 없다. 그렇다고 민심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재주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팝콘만 불쑥불쑥 터지는 게 낫다. 팝콘 냄비마저 폭발해 잿더미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밤  (0) 2014.06.26
4월의 전주  (0) 2014.06.26
일상  (0) 2014.06.07
기성용을 위한 변명은 아니고  (0) 2014.05.30
끄적끄적  (0) 2014.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