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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알몸 졸업식 뒤풀이와 프레임

“요즘 젊은 것들은 문제”라는 기성세대의 편견을 재확인시켜 주는 일이 있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차가운 겨울바다에 친구를 빠뜨리고, 후배를 발가벗기고 기합을 주는 식으로 졸업을 축하한다는 것이다.

이 기상천외한 졸업식 뒤풀이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퍼지자 연일 언론은 “학교는 군대보다 더한 위계질서 속에서 폭력에 무방비 상태가 돼 있다(조선일보)” “학교는 폭력 공장이다. 폭력을 배우고 폭력을 확산하는 것이다(한국일보)” “선후배 간의 강압적인 지배문화와 과시욕, 어른들의 방치가 상황을 악화시켰다(경향신문)” 등 우리 사회, 특히 학교에 내재된 폭력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 인터넷과 TV의 선정성에 노출된 이유라는 분석이 있었고, 입시 경쟁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욕구 불만이 충동적으로 폭발한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아이들의 폭력성을 바로잡고, 도덕을 회복해야 한다는 담론들뿐이다. 정작 그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이고 학교와 가정에서는 어떤 존재들이며 이들의 또래 집단은 어떻게 조폭처럼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단지 폭력의 일상화‧구조화, 인성교육의 붕괴를 개탄하는 목소리만 들려온다.[각주:1]  법과 도덕, 그리고 질서의 회복만이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앵무새처럼 무한 반복하는 우리는, 과연 정답을 찾은 걸까?

<프레임 전쟁(원제 Thinking Points : Communicating Our America Values and Vision)> 저자 조지 레이코프가 보면 ‘보수에게 힘을 실어준다’고 비판할지 모른다. ‘도덕과 규율’을 강조하는 것은 보수적 가치의 프레임에서 현상을 바라본다고 말이다. <도덕의 정치> <삶으로서의 은유>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등 여러 저서를 통해 ‘프레임’을 강조해 온 그가 한층 더 심화된 연구 내용을 담은 이 책에 따르면, ‘도덕과 규율’은 보수적 가치다. 아무리 논쟁적인 사안이라 할지라도, 보수적 가치를 담은 언어를 사용하면 보수적 프레임에 빠지게 된다. 지금 우리가 ‘졸업식 알몸 뒤풀이’의 사회구조적 원인을 분석하는 목소리나 이 문제에 대한 실체적 접근을 찾기 힘든 이유다.



왜?라고 묻기 전에 우선 기본적인 내용부터 짚고 넘어가자. 프레임은 우리의 아이디어와 개념을 구조화하고, 사유방식을 형성할 뿐 아니라 지각방식과 행동에도 영향을 준다. 하지만 우리는 프레임을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사용한다. 레이코프는 그렇게 프레임이 우리의 ‘상식’을 정의하고 사회를 구조화한다고 지적한다. 하나의 프레임은 표층 프레임(어휘, 개념)과 메시지 전달 프레임, 이슈 정의 프레임, 심층 프레임으로 이뤄지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심층 프레임, 즉 가치와 원칙이다. 말과 메시지와 이슈가 사라져도 원칙과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레이코프는 ‘가치와 원칙’이라는 심층적 프레임이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를 나누는 기준이라고 말한다. 책머리에서 레이코프는, 급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우익들로 인해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이 목소리를 잃어버렸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미국을 위대한 자유 국가로 만들어 준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며 이는 보수주의자들의 프레임이 미국을 지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문제는 프레임이며, 정치는 프레임 간의 전쟁이란 것이다. 그래서 그는 프레임의 힘을 낱낱이 파헤친다. 보수적 프레임과 진보적 프레임이 어떤 가치와 원칙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어떤 개념과 이슈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하고, 세상을 지배하는지 설명한다.

이코프는 우선 사람들은 ‘국가는 가정’이라는 은유로 자신과 국가의 관계를 바라본다고 말한다. 이 은유는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부모’라는 두 개의 이상화된 모형을 갖는다. ‘감정이입’과 ‘책임’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자애로운 부모’ 모형과 달리 ‘엄격한 아버지 모형’의 기본 요소는 ‘권위’와 ‘통제’다. 두 모형의 기본 요소는 각각 진보적 가치와 보수적 가치의 원천이다. 레이코프는 보호, 삶의 성취, 자유, 기회, 평등, 공정성 등을 진보적 가치로, 절제와 소유권, 위계를 보수적 가치로 꼽는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를 바탕으로 진보와 보수는 각각 공익‧자유 확대‧노동자의 권리‧다양성의 원칙과 도덕적 권위‧개인적 책임‧자유 시장‧자수성가의 원칙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졸업식 알몸 뒤풀이’를 둘러싼 논쟁과 ‘보수적 프레임’은 어떻게 연관될까? ‘엄격한 아버지’ 모형에서, 도덕성은 합법적인 도덕적 권위를 순종함으로써 나온다. 당신은 신에게 순종하고 법을 준수할 때 도덕적이다. 또 정부에서 일한다면 대통령에게, 자녀라면 부모에게, 학생이라면 선생님에게 복종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사회가 강조하는 권위, 인정하는 질서를 조용히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불복종은 곧 부도덕함을 의미하며, 여기에는 당연히 ‘벌(통제)’이 따른다. 이 공식에 따라 살펴보면, 졸업식 때 옷을 벗기거나 바다에 빠뜨려 뒤풀이를 하는 일은 도덕과 질서에 어긋나는 일탈행위이므로 용납될 수 없다. 폭력에 오염된 학교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선 ‘절제’가 필요하다. 가해학생의 처벌은 물론, 학교 폭력을 감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아이들의 일탈을 막기 위한 ‘규율’ 말이다.

규율이 존재하는 큰 이유는 ‘벌’을 주기 위해서다. 마침 경찰이 후배들에게 알몸 뒤풀이를 시킨 학생들을 모두 형사 처벌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 아이들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범죄자’ 낙인은 그 열일곱, 열여덟살들을 또 다시 방치하는 일이다. 물론 그건 당연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또 다시 보수적 프레임이 작동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절제’를 통해 도덕적 역량을 강화시킨 사람이 부를 얻는 일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이 충분한 절제력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가난하다는 이야기다. 보수주의자들이 사회 복지를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번역본이 출간됐을 때 진보 진영은 프레임 분석의 날카로운 분석과 통찰력에 감탄하며 “문제는 프레임이야!”를 외쳤다. 답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프레임이다. ‘우리만의 프레임’을 짜지 못할 뿐 아니라 지금도 보수적 프레임에 끌려가고 있는 게 한국의 진보다. 뉴타운‧재개발 공약을 모방했던 지난 총선, 국토균형발전이란 의제를 잃어버린 채 보수끼리 ‘신뢰’와 ‘백년대계’를 놓고 다투는 모습만 관전하고 있는 세종시 문제에 이어 이번 졸업식 논란까지, 변한 게 없다. 다가올 지방선거에선 무상급식이라는, 썩 괜찮은 이슈정의 프레임을 하나 갖게 됐지만  부족하다. 한국의 프레임 전쟁에서 진보의 승리를 목격하는 날이 아직 멀게 느껴진다.

덧.

예전에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를 읽고 썼던 글 http://blog.hani.co.kr/so38/14871

  1. 엄기호, 공격받는 청소년(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05875.html)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