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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굳이 우기자면

2005년 11월 16일은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인 셈이다. 하루 전, 나는 싸이클럽에 '동아리에 가입하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이때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던 그는 16일 자정을 넘긴 후 답글을 남겼다. 언제든 동방에 찾아오라고. 학관을 찾은 건 그 다음주쯤으로 기억한다. 1학년 때 잠깐 사회과학 동아리 활동을 했을 때를 빼고는 통 찾지 않던 곳이었고, 동방을 안내하는 표시 같은 것 역시 없어서 길을 헤매고 있었다. '이게 뭐냐'며 투덜대던 중, 카키색 비니를 쓴 하얀 얼굴의 청년이 학관 3층 복도 벽에 비스듬히 서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제법 불량스러워보였다. '뭐지'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회장님'은 내게 길을 안내해줬고, 그날 나는 어색하게 동방 한 쪽에 앉아 짜장면을 먹었다. 하얀 얼굴의 불량 청년 '회장님'이 사준 것이었다. 이후 자주 먹곤 했던 만보성 짜장면이었을까? 아무튼 공짜를 좋아하는 본성에 충실하게, 나는 열심히 탕수육도 집어 들었다. 그 후로 1년 하고도 한 달쯤 지난 날, 생애 첫 연애를 시작했다. 오늘은 그 첫 연애가 2500일을 채우고, '불량 청년'에서 아저씨로 변해가는 그와 한 약속을 지인들에게 알리는 청첩장이 도착한 날이다.


일을 마무리하고 카페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법 기억하고픈 하루가 됐다. 2013년 10월 15일. 오전에 내린 가을비로 공기가 이젠 서늘하게 폐를 채우는 날, 옛 생각에, 굳이 우기면서 만든 추억에 혼자 웃는다. 산다는 건 가끔 억지를 부리며 추억을 만들고, 기억을 떠올리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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